[에릭 존의 窓] 한국과 미국, 술 마시는 이유도 다르다

에릭 존 2022. 1.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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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회식 문화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도 반영하기에 드라마틱하게 다르다. 한국인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경향은 과거 널리 알려졌는데 다행히 과음이 줄어드는 추세로 보인다. 나는 두 나라의 회식 문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간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친구, 업무 상대방, 직장 동료들과 술 마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맛있는 갈비나 다른 음식으로 식사한 뒤 술을 주문한다. 그것이 맥주나 소주, 막걸리나 위스키일 수 있고 이것들 중 두 가지를 조합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와인도 포함될 수 있다. 이어 반찬 격인 ‘안주’를 시킨다. 종업원이 술을 테이블 가운데 가져다주고 술 종류에 걸맞은 잔을 내온다. 술과 잔, 안주가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지면 술자리를 마련한 사람이나 일행 중 선임자가 시작한다. 다시 말해 좌장이 잔에 술을 따르고 건네는 식이다. 맥주와 소주를 섞은 잔을 돌리기도 한다.

/일러스트=양진경

이렇게 술잔이 오가는 회식을 통해 가족과 업무, 고향은 물론이고 업무상 고민 등에 대해서도 서로 알게 된다. 이런 술자리에서 서로 건강을 기원하는 뜨거운 건배도 빼놓을 수 없다. 건배사에 따라 모두가 술잔을 들이켠 후에는 다시 술잔을 가득 채우고 다음 사람이 건배사를 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이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술자리가 긴장을 풀어주고 서로 유대감을 더 끈끈하게 강화한다고 본다. 10~20년 전보다는 덜하지만 이렇게 저녁 술자리를 통해 형성되는 네트워킹, 이른바 ‘인맥’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하다.

나는 미국의 음주 문화가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내가 미국에서 동료나 친구와 저녁을 할 때나, 서울에서 서양인 동료들과 저녁을 함께할 땐 식사 전에 각자 마음에 드는 칵테일을 주문한다. 시작부터 다른 셈이다. 마시는 속도나 주량도 자기 취향대로다. 와인은 그 자리에 모인 이가 모두 같은 잔으로 마시지만, 어떤 와인을 마실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자리를 마련한 이가 제안하는 와인으로 할 때도 있고, 고기나 생선 등 저녁 식사 종류에 따라 와인이 결정되기도 한다. 때로는 레스토랑에서 추천하는 와인으로 할 때도 있다. 저녁 식사 후 술을 마시거나 바에 가는 경우에도 역시 각자 취향에 따라 주문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또 술집에서 화면이 커다란 TV를 보면서 친구들과 대화하며 술 마시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애초부터 외국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바 이외에는 미국처럼 모든 손님이 TV를 보면서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아직 보지 못했다.

한국의 음주 문화를 경험하면서 장점도 많이 발견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집단적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음주 등 회식이 누군가에게 부당한 압력이나 괴롭힘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그 집단의 리더십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회식을 통해 집단이 더 생산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회식 문화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회식을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평가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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