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덕에 회사 키워.. 그 지역 문학 소개로 갚을게요"

곽아람 기자 2022. 1.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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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회사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 회사의 모태이자 의류 수출 기업인 한세실업 생산법인이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에 있거든요. 동남아에 빚진 것을 돌려줘야겠다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문학 작품을 번역해 소개하는 것으로 미약하나마 빚을 갚으려 합니다.”

조영수 이사장이 이번에 출간된 동남아문학총서를 들고 사무실에 걸린 베트남 화가의 풍경화 앞에 섰다. 그는“동남아에 대한 편견을 벗고 그들의 전통과 가치관을 이해하면 좋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세예스24문화재단 사무실, 조영수(76) 이사장(경기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한세실업, 인터넷 서점 예스24 등을 자회사로 둔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77) 회장이 2014년 사재를 털어 설립한 사회공헌재단. 조 이사장은 김동녕 회장의 아내다.

그간 동남아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꾸준히 열어 온 재단은 최근 동남아 근현대 문학을 묶어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시리즈를 발간했다. 첫 신호탄으로 베트남 작가 도빅투이의 ‘영주(領主)’, 인도네시아 작가 함카의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태국 작가 아깟담끙 라피팟의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극’ 등 모두 3권을 냈다. “각국의 특성과 국민성을 대표하는 작품을 골랐습니다. 경제적으로 뒤처진다는 이유로 우리가 간과하는 동남아의 빛나는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죠. 저희의 자그마한 노력이 향후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뜻은 확고했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다. 국내에 동남아 언어 전공자가 많지 않아, 번역자를 찾는 데만 4년이 걸렸다. 번역자가 드물다 보니 번역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조 이사장은 “수익보다는 기업의 사회 환원을 목표로 하고 정말 공을 많이 들여 만든 책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갈구한다. 한 예로 베트남 소설 ‘영주’의 여성들은 마을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첩으로 삼으려 하는 포악한 영주의 희생양으로만 남지 않고 적극적으로 운명과 맞선다. 조 이사장은 “전통과 현대의 갈등 속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동남아 근현대문학의 특징”이라고 했다.

한세실업은 최근 지난여름 베트남 생산법인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한국인 직원을 국내로 호송, 치료하기 위해 1억원이 넘는 에어 앰뷸런스 비용을 전액 부담한 일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회장님이 그런 걸 알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어요. 가을마다 동남아 공장이 있는 지역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운동회를 열고 경조사를 챙기는 등 동남아엔 저희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어요.”

재단은 예일대가 이화여대와 공동 주최하는 동남아 관련 국제 학회도 후원한다. “일본⋅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 관련 학회는 이미 지원이 많잖아요. 동남아에서 우리 회사의 좋은 일이 많았기 때문에 동남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예일대에 ‘그냥 아시아 연구엔 지원 않겠다. 동남아 파트 관련 연구가 있어야만 지원을 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죠.” 조 이사장은 “앞으로 ‘총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남아 10국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 내는 것이 우리 재단의 목표”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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