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용후핵연료 관리할 방안 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파이로-소듐냉각고속로를 기초·원천기술 확보 단계까지 연구 개발할 것을 권고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연구개발 적정성 검토위원회’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민간전문가 9인이 3개월간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용후핵연료 기술을 평가한 결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의 하나인 파이로-소듐냉각고속로 연계 시스템이 기술성, 안전성, 핵 비확산성을 갖춰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77년 고리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이래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에는 해결해야만 하는 큰 부담이 존재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이다. 우리나라 원전에서는 2020년 말 기준으로 1만7700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해 각 원전 부지에서 임시 저장 중이다. 원자력 반대자들은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할 방안이 없다고 원자력발전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은 있다. 31개 원전 운영국 중 핀란드·스웨덴을 비롯한 10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심지층(深地層)의 동굴에 넣고 인공 방벽을 설치해 인간 생활 환경과 영구히 격리하는 ‘직접 처분’을 관리 방안으로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중국·러시아·인도·일본·영국은 습식공정기술을 이용하여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재활용할 수 있는 성분을 분리하고, 심지층에 처분하는 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처리 후 처분’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나머지 원전 운영국들이 자국의 환경에 적합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성분을 살펴보면 일부 국가들이 ‘처리 후 처분’을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으로 결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10년 냉각한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를 기준으로 하면, 질량의 약 93%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이 방사능으로는 사용후핵연료 전체의 0.001% 미만에 불과하다. 반면에 질량으로 각각 1.4%와 0.53% 정도에 불과한 초우라늄원소와 세슘/스트론튬이 사용후핵연료 방사능과 열 발생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초우라늄원소는 핵연료로 재활용하면 독성이 적은 물질로 핵종 변환이 가능하고, 세슘/스트론튬은 300년만 보관하면 방사능과 열 발생량이 1000분의 1 이하로 감소한다. 따라서 쓰레기를 ‘분리 수거’해 유용한 물질은 재활용하고 꼭 버려야 할 것만 버리듯이, 사용후핵연료를 특성대로 분리하고, 재활용하면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상용화된 습식공정기술을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로 선택할 수 없다. 습식공정기술로 처리하면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습식공정기술에 비해 기술 성숙도는 낮으나 성장 잠재력은 높은 파이로 공정 기술을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로 선택하고 1997년부터 연구 개발을 수행해 왔다. 2011년부터 10년간은 미국과의 공동 연구도 진행했다. 파이로 공정은 전기화학 반응을 이용해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 초우라늄원소, 세슘/스트론튬 등을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플루토늄이 분리되지 않아 습식공정기술에 비해 핵확산 저항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장점이 있어 핵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과의 공동 연구도 가능했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이고, 원자력 발전이 발생시킨 부담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계속 뒤로 미룰 수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로-소듐냉각고속로가 기술적 가능성을 인정받고 연구 개발이 재개된 것을 환영한다. 이 기회에 책임지는 원자력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으로 자리매김하는 연구 개발이 추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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