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 해외로 간 풍각쟁이 오빠
2012년에 싸이가 노래한 ‘강남스타일’은 ‘한국 오빠’, 정확하게는 ‘강남 스타일의 노는 오빠’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허나 계보 없는 오빠가 어디 있겠는가! ‘노는 오빠’의 계보를 찾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0년대의 ‘풍각쟁이 오빠’를 만날 수 있다. 물론 ‘풍각쟁이 오빠’를 전후(前後)로 해서도 노는 오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풍각쟁이 오빠’가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그 오빠가 여전히 소환되고 부활하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의 박향림이 노래한 ‘오빠는 풍각쟁이’는 박영호 작사, 김송규(김해송) 작곡으로 1938년에 발매되었다. 당시 음반 광고에서 “돌부처라도 무르팍을 치고 돌아앉을 익살 진진한 명랑 가요”라 소개한 만큼 이 노래는 웃음을 지향한 ‘만요(comic song)’로 볼 수 있다. 노래 속 오빠는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고, 회사는 지각하면서 월급이 안 오른다고 짜증 내는 제멋대로 사는 오빠다. 노래에서는 현실 남매의 모습도 보인다. 맛있는 것은 혼자 먹고, 여동생에게 심부름시키고 엄벙뗑하고, 극장은 혼자 가면서 여동생 편지를 훔쳐보는 그런 오빠 말이다. 노래에서 여동생은 콧소리와 “무어(뭐)”라는 감탄사를 섞어가며 오빠를 ‘풍각쟁이’라고 놀리고 투정 부린다.
그런데 이 오빠가 일을 냈다. 시대와 상관없이 끝없이 부활하더니만 이번에는 해외로 갔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24일, 쿠바의 제2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에서 ‘Electo Silva 국제합창작곡콩쿠르 2021′이 열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 작곡가 서지웅(Jee Seo)이 편곡한 ‘옵빠는 풍각(風角)쟁이’(영문명 Oppa Is a Free Spirit)가, 다리아 아브루 페라우드(Daria Abreu Feraud)의 지휘로 연주되어 편곡 부문 1위에 올랐다.
쿠바의 현지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우리말로 “난 몰라 난 몰라 난 몰라”로 화음을 쌓아가며 시작된 ‘오빠는 풍각쟁이’는 시종일관 감탄과 웃음을 선사했다. 정확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 편곡자 서지웅씨를 찾았고,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에 살고 있는 그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노래”라 ‘오빠는 풍각쟁이’를 선곡했고, “우리말의 맛을 살리면서도 합창의 특성을 잘 이용해 원곡의 해학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더 이상 제거할 것이 없을 때까지 지워나간 마지막 수정 작업이 어려웠다”고 말하는 그! 덕분에 풍각쟁이 오빠가 시대를 넘어 해외까지 갔으니 풍각쟁이 오빠도, 그 오빠를 부활시킨 오빠도 모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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