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
[경향신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페이스북에 쓴 ‘여성가족부 폐지’ 때문에 주변이 시끄럽다. 정부 기구란 없앨 수도 있고 확대할 수도 있는 터라 그 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닌 듯하다. 소란의 까닭은 말의 정치적 맥락 때문이다. 윤 후보는 이 말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여 특정 집단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기획이다. “페미니즘이 그렇게 혐오, 배제해야 할 대상인가? 성별 대결을 부추기는 것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도리인가?” 며칠째 윤 후보에게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 후보는 페미니즘을 비틀어 분열을 조장하고 그것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걱정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 문명국가가 되는데 페미니즘의 기여가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 후보의 페미니즘 비틀기가 그간에 이뤄놓은 문명화의 수준을 퇴행시키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
윤 후보의 노림수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갈등의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부터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전통 규범이 가장 강한 경북 안동에서 남자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스물셋에 청상이 된 할머니는 아들 형제를 애지중지 키우셨는데 나는 거기에서 난 첫 손자였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특별한 ‘남자’였겠는가. 내가 대학에 진학하여 민주화, 인간화를 꿈꾸는 선배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할머니의 품을 세상 전부로 알면서 마초로 살았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학생운동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나는 좋은 형들에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페미니즘의 이치를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겼던 청소년기까지의 가슴, 그리고 사람은 모두가 하늘처럼 귀하다고 배운 청년기 이후의 머리가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가슴과 머리의 불화 때문에 결혼 생활은 도를 닦는 것 같은 힘든 수련 과정이었다.
밑줄 치며 외운 페미니즘이었기에 그것은 나에게 늘 버거운 과제였다. 어쩌다 여성 교육 단체의 공동대표도 지냈고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조직위원회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나는 늘 얼치기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수준은 자라지 않았고 설명 능력은 늘 부족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가슴에 자리 잡은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으니 영락없는 자기분열이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한 개인의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도 수반하였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은 기존의 가치 질서를 바꾸는 운동이기 때문에 사회적 충돌은 불가피했다. 여성의 해방 과정은 힘든 투쟁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라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짧은 페미니즘 역사를 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 후보는 이런 가치 질서의 전환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균열을 증폭시키면서 이간계(離間計)를 쓰고 있다. 이간계가 병법에서는 최고 책략으로 꼽힌다지만 공동선을 만들어가는 정치과정의 전략으로서는 최하책이다. 여전히 각종 억압과 위협으로부터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에 대해 혐오와 배제를 선동하여 정치적 반사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윤 후보의 페미니즘 비틀기는 비정(非情)이며, 특정 사회적 약자를 가상의 적으로 삼아 왕따 구도를 설정해 가는 비정(秕政)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엠마 왓슨의 유엔 연설은 이런 위험을 예고한 경종이었다. 그는,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하는 가치라고 하면서 히포시(HeForShe) 운동을 제안했다. 페미니즘이란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진보라는 얘기다. 그렇다. 여성과 남성이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남성을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가치가 아니다. 여성이 살기 좋은 사회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좋은 사회다. 성차별이 없어지면 다른 모든 사회적 차별도 없어진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다문화가족, 왼손잡이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출발이다. 나눔, 배려, 돌봄, 상생, 협력, 평화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우자는 가치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페미니즘을 비틀어서 갈라치기 캠페인으로 소비하려는 윤석열 후보의 간계(奸計)가 이런 가치를 훼손, 왜곡하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자.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 왓슨이 제안한 히포시의 깃발을 들자.
김태일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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