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기독교 문명의 선물, 일요일과 주말

2022. 1. 1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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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일요일을 국가휴일 첫 제정
"재판은 이날엔 진행하지 말 것이니.."
1895년 을미개혁, 관청 집무시간 규정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반도에 근대화의 물결이 찾아온 구한말, 1895년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 ‘각령 제8조’는 관청의 집무시간을 규정하며 ‘일요일은 전일 휴가로 하고 토요일은 정오 12시로부터 휴가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서구의 달력인 태양력을 채택함에 따라 각 달을 7일씩 나누며 ‘1주일’이 생기자,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주말’의 개념도 함께 등장한 것이다. 온갖 풍상을 겪은 한반도 역사 속에서 1895년 제정된 일요일 휴무만은 확고히 정착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일요일은 물론 토요일도 ‘전일 휴가’다. 그밖에도 온갖 ‘빨간 날’들로 한 해의 달력이 장식된다. 새해인 2022년 관공서 기준 공휴일은 총 67일, 일요일까지 합친 휴일은 118일이다. 1년 365일의 거의 3분의 1일에 육박한다. 대한민국이 일하기 좋은 나라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안정된 정규직을 확보한 이들에게는 매우 좋은 나라임은 분명하다.

매주 일곱 번째 날이 쉬는 날이 된 것은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일요일의 기원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믿는 유일신 하느님(아랍어로는 ‘알라’)은 자신이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했음을 계시를 통해 알렸다. 창조주는 6일간 창조의 ‘일’을 한 후 제 칠일에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고 이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고 성경 창세기에 기록돼 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제 칠일에는 절대로 일을 하면 안 되었다. 쉴 형편이 되는 집주인 내외뿐 아니라 이날에는 ‘너희와 너희 아들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창조주의 명령이다.

유대인들에게 한 주의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쉬는 날을 그다음 날인 일요일로 하루 늦췄다. 기독교가 믿는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뒤 부활한 날이 ‘안식일 다음 날’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에 뿌리를 둔 문명권에서는 ‘일요일’의 이름이 ‘주님의 날’인 언어들이 많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등이 그러하다. 그리스 정교회가 만개한 러시아에서는 일요일을 지칭하는 명사가 ‘부활’이다.

일요일을 국가 공식 휴일로 처음 제정한 이는 기독교 문명을 받아들인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다. 그는 321년, 이날에는 도시의 ‘관료들과 시민들은 휴식하고, 모든 작업장은 문을 닫도록 하라’고 명했다. 로마법을 집대성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로마법 대전)에 들어가 있는 로마제국의 389년 법령에 따르면 ‘옛 선인들이 ‘주님의 날’이라고 합당하게 이름 한’ 일요일 외에도 부활절 전후 7일과 크리스마스 날부터 14일간 관공서와 법원의 업무를 멈춰야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수록된 469년 법령은 ‘거룩한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를 매우 구체적이고도 웅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날에 법원 서기들은 잠잠히 있을 것이며, 변호인들은 법정에서 물러날 것이며, 재판은 이날에 진행되지 말 것이며, 경매인의 거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며, 소송 당사자들은 논쟁을 풀 것이며, 서로 적대하는 자들은 두려움 없이 함께 있을 것이며, 서로에 대한 뉘우침이 이들 마음속에 들어가야 할 것이며, 합의하고 조정하는 일들만이 큰 소리로 이루어지도록 하라. 그러나 하느님께 헌정된 이날에 여유로움을 허용하지만 그 누구이건 부적절한 쾌락을 탐닉하는 일은 허용치 않는다. 이날은 극장이나 마차 경주장이나 야생 짐승 죽이는 구경을 위해 있는 날이 아니다.”

로마제국은 패망했으나 로마제국 영토에 심어진 기독교는 근대 시대에 들어와 전 세계 종교로 점차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구의 달력과 기독교 휴일도 함께 전파됐다. 일요일과 주말은 기독교가 온 인류에게 준 선물이다. 선물을 선물로 기억하거나 고마워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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