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점 상대평가로 되돌리자.. 학생들 "다시 학점에 목매게 하나"
최근 한 서울 사립대에서 인문 과목을 가르치는 A 교수는 지난 2학기 성적을 학생들에게 통보한 후 골머리를 앓았다. B 또는 C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왜 학점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면서 항의하는 이메일을 줄줄이 보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지난해 1학기까지는 절대평가로 학점을 줬다. 그 결과 80% 이상 학생들이 A나 B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학기부터 다시 상대평가로 돌아가면서 A학점 비율이 35% 이하로 줄자 학생들 불만이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강의와 시험이 일상화되면서 성적을 엄밀히 산출하기 어려워지자 대학들이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부가 2020년 전국 4년제 대학 195곳 학점 현황을 분석했더니, 전체 학생의 87.5%가 ‘B학점 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71.7%)보다 15.8%포인트 증가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다시 상대평가로 전환한 대학이 늘고 있다. 강원대·충남대·한양대·한국외대 등이 지난해 상대평가로 돌아갔다. 서울시립대는 오는 3월 신학기에 상대평가로 복귀할 방침이다. 군 전역 후 복학을 앞둔 김모(23)씨는 “올봄에 상대평가로 돌아가면 학점이 짜질 텐데 지난 2년간 절대평가로 학점을 잘 받은 학생들과 비교하자니 왠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대학 상대평가 체제 자체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평가가 우리나라 대학에 자리 잡은 건 2000년대 중·후반부터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전보다 취업문이 좁아지자 대학들이 학점을 후하게 줘 학생들 부담을 덜어주려는 경향이 팽배했다. 기업 등에서는 학점을 못 믿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교육부는 2014년 ‘대학구조개혁평가’ 지표 중 하나로 ‘성적 분포의 적절성’을 포함해 상대평가를 유도했다. 이 지표는 이후 사라졌지만 상대평가를 고수하는 대학이 여전히 많다. 한 국립대 교무처장은 “상대평가는 ‘우리 대학이 학점을 막 퍼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대평가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대로 배웠는지’보다 ‘남보다 잘했는지’ 같은 상대적 서열에 치중하는 상대평가제는 학생 개인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 우수 대학들도 이런 이유로 상대평가를 하지 않는다. QS세계대학평가 순위에서 10년간 1위를 지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교수 규칙에 “각 학생 성적은 강의 내 다른 학생들과 독립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면서 사실상 상대평가를 금지하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 학생들은 ‘협업 능력’ ‘소통 능력’ ‘창의성’ 등을 갖춰야 하는데, 동료를 눌러 이겨 1점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면 그런 역량을 어떻게 기르겠느냐”고 했다. 다만 ‘학점 부풀리기’ 논란을 피하려면 보완책은 있어야 한다.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절대평가로 전환해 나가면서 교수들이 스스로 자기 교육과정에 맞는 평가 기준을 개발해 평가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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