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크로스컨트리 '전설'..설원의 부름, 후회없이 답하리 [니하오~베이징 ⑦]
[경향신문]
2011년 사상 첫 동계AG 금메달
크로스컨트리 불모지의 개척자
은퇴 선언·출산 등 고비 넘어
스피드·체력·근성 ‘그대로’
41세 최고령에도 출전권 따내
스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높은 산에서 언덕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면 알파인스키, 평지와 비교적 완만한 언덕을 지치면 노르딕스키다. 노르딕스키의 대표적인 종목이 크로스컨트리다.
크로스컨트리는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종목 중 하나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식 종목으로 치러졌다.
‘설원의 마라톤’으로도 불리는 크로스컨트리는 눈 덮인 길을 스키로 이동하던 북유럽에서 시작된 종목이다. 장신인 북유럽 선수들이 체격적으로도 유리하고 훈련 여건 등도 좋아 초강세를 보인다. 한국은 크로스컨트리의 불모지다. 선수 수도 적고 제반 시설도 취약하다. 아직 올림픽 무대에서 크로스컨트리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꾸준히 태극마크를 단 선수가 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전설’ 이채원(41·평창군청)이다. 이채원은 지난해 12월 말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극동컵 겸 대한스키협회 2022 베이징올림픽 출전 선수 선발전에서 클래식과 프리 합계 30분34초8을 기록하며 1위로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채원의 6번째 올림픽 티켓이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부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빠지지 않고 올림픽 무대에 올랐던 이채원은 2022년 베이징 대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올림픽 6회 출전은 한국 선수 동·하계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기록이다. 이규혁(빙상), 최서우, 최홍철, 김현기(이상 스키) 등 4명만이 달성했던 기록이다.
이채원은 키 154㎝로 크로스컨트리 선수를 하기에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스피드와 체력, 특유의 근성을 앞세워 ‘전설’을 써내려갔다. 전국 동계 체육대회에서 1996년부터 2020년까지 금메달만 78개를 따냈다. 최우수선수(MVP)에도 세 번이나 선정됐다.
2011년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동계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따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30㎞ 프리에서 33위를 달성했는데, 이는 한국 동계올림픽 이 종목 역대 최고 순위로 남아 있다. 2017년 2월 열린 FIS 월드컵에서는 12위를 달성해 한국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이채원의 크로스컨트리 선수 생활은 의외로 ‘착각’에서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던 이채원은 강원도 대화중 시절 알파인스키인 줄 알고 크로스컨트리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원치 않던 길로 시작했으나 이채원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화중 3학년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무관심과 부족한 지원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했던 이채원은 크로스컨트리를 관두고 싶을 때마다 완주를 통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쾌감을 잊지 못해 다시 설원에 섰다. 2013년 1월에는 출산을 한 뒤 2개월 만에 훈련을 시작하기도 했다. 육아와 운동을 병행하는 쉽지 않은 길을 걸었지만 이채원은 매번 스키에 올라탔다.
사실 이채원은 2018 평창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평창 대회에서 남녀 선수 통틀어 최고령 선수로 이름을 올렸던 이채원은 남편과 딸의 응원을 등에 업고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평창 대회의 성적은 15㎞ 스키애슬론 57위, 10㎞ 프리 51위를 기록했다.
한 아이의 엄마로 돌아가려던 이채원은 다시 설원의 부름을 받고 복귀했다. 주변에서 “다시 도전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에 훈련을 시작했고 후배들을 뛰어넘어 올림픽 출전권까지 거머쥐게 됐다. 현재 임의규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감독보다 세 살이 더 많은 이채원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최고령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의 이채원은 마지막 올림픽을 후회 없이 즐길 준비를 마쳤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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