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무기부터 서울의 건설장비까지..세월을 벼려온 대장간
[경향신문]
서울역사박물관 보고서
‘미래유산’ 4곳 역사 기록
건설로 호황 맞았지만
재개발로 터전서 밀려나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인 ‘야장(冶匠)’은 조선시대 국가의 관리를 받는 장인이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전국의 야장(710명) 중 60%가 서울에 있었으며 공조(工曹)와 군기시(軍器寺), 상의원(尙衣院) 등에 소속돼 무기와 의례에 쓰이는 각종 철물을 생산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 후기에는 군기시를 중심으로 한 무기 생산이 각 군영(軍營)으로 나뉘는데, 지금의 서울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가 훈련도감 동영이 있던 곳이다. 인근은 훈련도감에 소속된 140명을 비롯한 수많은 대장장이들의 활동 무대였다. 해방 이후 이 일대가 한국 철물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1970년대 말까지 70곳 넘는 대장간이 운영됐던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불광대장간 창업주 박경원씨(84)가 강원도 철원에서 상경해 처음 일했던 대장간 역시 을지로7가에 있었다. 기술을 익힌 박씨는 1965년쯤 불광초등학교 개천가에서 손수레에 이동식 대장간을 열었다. “굴레방다리(아현역) 밑에서 리어카 대장간 하는 걸 보고 시작했어요. 리어카이지만 곡괭이도 벼리고 못하는 게 없었어요. 화덕은 사과 궤짝에다가 진흙을 바르고 바람구멍을 만들었어요. 풀무질은 다 손으로 했어요.”
그는 1973년 불광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불광대장간을 개업했지만, 1978년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현재 자리로 옮겨 2대째 운영 중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12일 발간한 ‘서울의 대장간’ 보고서에는 불광대장간을 비롯해 동명대장간, 형제대장간, 동광대장간 등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대장간 4곳의 기록이 담겼다. 보고서는 이 대장간들을 처음으로 심층적으로 기록했다.
대장간은 한때 호황기였다. 서울은 1966년부터 1984년까지 전체 면적의 35%에 달하는 지역에서 토지구획 정리사업이 이뤄졌다. 건설업은 호황이었고, 농기구나 생활용품을 만들던 대장간들도 건설 현장에 필요한 도구를 공급하면서 바빠졌다. 박경원씨는 “6·25전쟁 후 다시 집을 지어야 하니 전국에서 다 사 갔다”며 “삼청교육대에서 땅 파는 화전 괭이를 3000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을지로 대장간들이 서로 만들어 팔았던 적도 있다”고 회상한다.
을지로7가에 모여 있던 대장간들이 주변부로 밀려난 것은 1980년대 서울운동장이 확장되고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면서다. 일부는 서울운동장 뒤편에 터를 잡으면서 중구 신당동에 20개 넘는 대장간이 몰렸다.
경기 남양주 퇴계원에 위치한 동광대장간도 시작은 신당동이었다. 창업주 고 이흔집 옹이 경남 밀양에서 상경해 이곳에 첫 대장간을 열었다. 이후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이전했다가 1996년 전농동에 자리를 잡아 15년간 운영했다. 2020년 고인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이일웅씨가 대를 이었지만 또다시 지역 재개발을 만나 지난해 남양주에 새로 문을 열었다.
이일웅씨는 “전농동은 기찻길이 가깝다보니 주변에 주택이 없어서 대장간을 운영하기 좋았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도 들어오고 땅값도 많이 올라서 동네 대장간이 전부 서울 밖으로 나갔다”고 전한다.
서울의 대장간은 도시 환경과 소비 문화 변화에 맞춰 새로운 도구를 생산해 적응 중이다. 최근에는 캠핑 인구가 늘면서 손도끼, 망치, 장도리 같은 장비를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텃밭을 가꾸거나 등산, 약초 채취 등 취미용품으로 필요한 도구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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