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 김종철 [이명원의 내 인생의 책 ④]
[경향신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2000년 겨울이었다. 당시는 일종의 필화로 박사과정을 그만둔 후의 유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은 지방에 있는 한 대학의 영문과 선생인데,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꿔 학위과정을 계속하는 게 어떤가 하는 내용이었다.
학위를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심정이었기에 전화를 끊었다. 당시에 고명철·홍기돈 등과 함께 ‘비평과 전망’이라는 무크지를 만들고 있었는데, 2호에 정지환 ‘말’지 기자가 김종철을 취재해 표지사진으로 실었다. 그러다가 2007년 즈음에 오창은·하승우와 ‘지행네트워크’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김종철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김종철의 문학과 사상을 접하기 전까지 나 역시 다른 한국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주의’를 문명의 필연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신념을 별로 회의하지 않았다. ‘근대’ ‘근대문학’ ‘근대성’과 같은 용어는 발전론적 ‘근대주의’를 설명하는 삼위일체 비슷한 교리였다.
김종철의 담론과 사상에서 나는 ‘비근대성’이라는 개념적 함축을 발견했다. 이것은 직선론적 발전이나 퇴행 같은 개념의 상대화를 의미했고, 서구·비서구를 넘어선 인류의 오랜 토착적 문화와 우정과 환대의 연결망 같은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게 만들었다.
만들어진 근대문학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 혹은 야성의 목소리를 탐지한다는 것의 중요성도 새삼스럽게 느꼈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김종철의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명명이다. 그러나 동시에 김종철은 ‘공부하는 인간’이었다. 나 같은 비평가들을 향해서 공부 좀 하라는 게 선생의 흔한 유머였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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