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에 길고양이 돌보다 '생활밀착형' 직업 됐네요"
“저도 2007년 그 일이 있기 전에는 밤에 골목에서 갑자기 고양이를 만나면 발을 쿵쿵 구르며 쫓곤 했어요.”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용한 시인이 지난 15년 ‘고양이 작가’로 살게 한 그 일은 뭘까? “아내가 불러 집 바깥에 나가 보니 어미 고양이가 새끼 다섯 마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더군요. 한동안 그 장면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제 안에 보이지 않게 잠재된 측은지심을 건드린 거죠.”
곧바로 시인은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고 틈틈이 고양이 사진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이 콘텐츠가 뜻밖에 호응을 얻어 2009년 그의 첫 고양이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모두 5만권이 팔렸고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그가 쓴 고양이 책을 원작으로 길고양이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춤>(2011)도 제작됐다. 지난달 나온 그의 13번째 고양이 에세이집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문학동네 펴냄)도 벌써 6천권이나 나갔단다.
지난 10일 서울 양재역 근처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자연 가까이 살고 싶다는 아내 뜻에 2009년 경기 양평의 시골로 이사한 그는 자택 테라스에 ‘고양이 식당 1호점’을 열었고 동네 할머니와 아저씨가 앞서 운영해온 ‘고양이 식당 2호점과 3호점’에도 사료를 후원했다. 사료 비용만 한 달에 대략 100만원가량 들었는데 이 중 60%는 그의 팬들이 보내준 현물 후원으로 해결했단다. 그는 지난해 여주로 집을 옮기고도 2호점과 3호점 사료 후원은 계속하고 있다. “충북 음성 처가에서 돌보는 길고양이 스무 마리까지 모두 50마리 정도 사료 후원을 합니다. 제가 일 년에 한두 번 에스엔에스에 후원공지를 하면 많으면 백분 정도가 후원을 해주죠.”
13번째 고양이 책에는 저자가 13년 간 양평 시골 마을에서 캣대디로 살며 보살핀 길고양이들과 나눈 진한 우정의 시간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1호점 첫 고객 ‘바람이’는 박새를 세 차례나 사냥해 그의 집 테라스 위에 물어 놓았단다. 처음 두 번은 죽은 새였는데 그가 땅에 묻자 다음엔 살아있는 새를 잠시 기절시켜 던져놓았단다. 저자는 3개월 동안 밥을 먹여준 주인이 죽은 새는 싫어한다고 생각해 숨을 쉬는 새를 선물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시인은 고양이 작가로서 자신의 특장점을 “자연과 어울리는 고양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가 아마 눈밭에 있는 고양이 사진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찍었을 겁니다.” 실제 그의 책에는 눈밭이나 복사꽃, 낙엽 더미 등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의 품 안에 고양이들이 녹아든 사진들이 가득 담겼다. 시인의 책을 보고 애묘인이 된 이들도 많겠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가족이 먹을 게 없어 사람이 버린 총각무를 먹고 있는 사진을 올렸을 때 반응이 가장 컸죠. 이 사진 때문에 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어요.”
시골에서 캣대디로 살며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2년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 때문에 정신적으로 매우 위축돼 고양이 사진조차 찍지 못했단다. “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시골이라고 도시와 다르지 않더군요. 식당을 찾는 고양이 때문에 텃밭이 망가진다고 주민들이 쥐약을 놓아 고양이 10마리가 피해를 봤죠. 일부러 풀어놓은 사냥개 때문에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요.” 이런 악의에 맞서 그도 처음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안내문을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 우편함에 넣어두는 등 강하게 대응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단다. “세게 나가면 자칫 저와 동네 전체의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쥐약을 놓던 이웃에게 뇌물에 가까운 선물 공세를 펼쳐 효과를 봤죠. 그 분이 제 조언을 받아들여 쥐약 대신 텃밭 주변에 그물을 설치했으니까요.”
2007년 집앞 새끼 다섯마리 ‘캣대디’로
블로그 사진 뜻밖 호응 책으로 펴내
일본·중국·대만 번역 출판…다큐영화도
2009년 양평 이사 ‘고양이 식당 1호점’
13년간 먹이 주며 교감한 이야기 담아
13권째 에세이집 내 ‘고양이 작가’ 명성
일본과 인도, 대만, 라오스 등 세계 6개국 30곳에서 만난 고양이 이야기를 2014년 책으로 내기도 했던 그는 “한국 고양이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것 같다”고도 했다. “인도 콜카타 빈민들은 하루 두끼 먹기도 힘들지만 골목에서 고양이 밥을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어요. 멀리 시장까지 가서 닭이나 생선 내장을 얻어와 고양이에게 주더군요.” 그는 “한국에서 고양이 학대는 여전하지만 2007년과 견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제가 처음 고양이 밥을 줄 때만 해도 열이면 열 다 욕했어요. 변태 새끼라는 욕까지 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고양이 밥을 주는 가게를 일부러 찾기도 하잖아요. 가장 큰 변화는 제주에서 느낍니다. 원래 바닷가 주민들이 생선 훔쳐간다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데 최근 제주를 갔더니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어요.”
시인은 고양이 작가로 살기 전 10년을 전업 여행 작가로 살았다. 1998년 낸 <사라져 가는 오지 마을을 찾아서>(실천문학)는 5만권이나 팔렸다. 티베트나 몽골 등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지는 곳을 주로 찾았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충주댐 건설로 월악산 뒤편 고향 마을이 수몰된 중 2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단다. “어릴 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강을 따라 다른 동네에 가거나 산을 두 개씩 넘어 먼 데까지 다니곤 했어요.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있었죠. 제가 오지 여행가로 나선 것도 아름다운 고향을 찾으려는 마음이 잠재 의식 속에 있어서겠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과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죠. 음악이나 영화를 두고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측은지심이 있어요. 반려 동물을 돌보고 아끼는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제 몸 속에 내재화되면서 생활이 된 거죠.”
시인 아닌 고양이 작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고 하자 그는 “고양이 작가라서 당당하다”고 받았다. “시인과 고양이 작가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양이 작가로 살면서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돈벌이를 하잖아요. 고양이 작가는 제가 생계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저의 생활 밀착형 직업이죠.”
계획은?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퍼지기 전에 일본 고양이 섬 여행 책을 내려고 섬 12곳을 다녔어요. 기회를 봐서 이 책을 내려고요. 또 코로나가 한풀 꺾이면 터키, 그리스, 모로코와 함께 고양이 천국으로 불리는 지중해 몰타 섬의 고양이 책도 낼까 생각 중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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