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우크라이나는 왜 분노하는가

김광태 2022. 1. 12. 18: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지난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가 공개됐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이 드라마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심기에 생채기를 내고 있나 보다.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불어 한마디도 못 하는 에밀리가 프랑스 파리 마케팅회사에서 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겪는 좌충우돌을 다룬 내용이다. 특히 아름다운 파리의 배경이 어우러져 볼거리가 많았다.

문제는 극중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설정된 여성 조연 '페트라'의 엉뚱하기 짝이 없는 역할에 있었다. 페트라는 쇼핑하다 별생각 없이 옷이나 장신구를 훔친다. 한편으론 프랑스에서 강제추방 당할까봐 끙끙 앓는다. 입고 나온 옷 또한 한참 뒤떨어지는 등 온통 부정적인 묘사 뿐이다. 게다가 별다른 존재감 없이 짧게 등장하고 퇴장하고 만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열받을 법도 했다. 그들은 "편견과 선입견을 조장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오죽했으면 우크라이나 문화장관까지 나서서 모욕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을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유럽의 화약고'가 된 우크라이나의 딱한 현실이 오버랩됐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약 10만명의 병력 배치를 끝냈다. 언제든 치고 들어갈 태세다. 러시아는 역대급 대규모 군 기동훈련을 전개했고, 최신형 마하9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 발사시험 성공 장면을 연일 송출했다. 근육질의 강한 군사력을 과시하듯 겁박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같은 위기의 배경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과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는 땅이 넓고 비옥해 예전부터 많은 나라들이 탐내던 지역이다. 면적은 60만3628㎢로 남한의 6배다. 현재 4150만 명의 인구는 독립국가연합 국가 중 둘째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 시대 예카테리나 2세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였다. 이후 1954년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편입시켰다가 1991년 소련 해체로 우크라이나는 독립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서방과의 안보 완충지대로 남기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 등 경제·군사적 목줄을 쥐고 친러 인사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 장악력을 유지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단의 크림반도를 빼앗은 뒤 러시아계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분리독립을 지원하며 분열을 부추겼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지대' 확보 때문이다. 과거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나토(NATO)에 가입했다.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나토의 한 식구가 됐다. 나토는 야금야금 동진을 계속했다. 러시아도 할 말은 있어 보인다. 러시아는 서방에 완벽히 포위됐다며 안보위협이 심각하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과거 소련 시절엔 서방이 소련의 도발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꼈다면 이제는 러시아가 서방의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 한마디로 나토는 러시아 코 앞에서 칼을 겨누지 말라는 얘기다.

역사의 비극은 반복되는 것일까.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나토,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세기의 담판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이 일련의 협상들은 2차 세계대전 종료를 앞둔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소환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해법이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손에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유럽의 체스판이 된 우크라이나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어떤 말들을 주고 받을까. 한국시간으로 11일 열린 1라운드 회담에선 예상대로 이렇다할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들의 패를 공개한 탐색전으로 끝났다.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과인지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데자뷔가 느껴진다. 해방 직후 한반도가 그랬다. 주권국가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담판으로 결정되고 있는 형국이다. 불행하게도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일련의 회담에 참석하지 못한다.

트라첸코 우크라이나 문화부장관은 '좀도둑 이민자'로 묘사된 넷플릭스 드라마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외국에서 우크라이나인을 그렇게 보는가"라고 반문했다.

그의 트윗엔 약소국의 비애와 한탄이 짙게 배어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 더 큰 위기로 빠져들지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복잡다단한 국제질서의 비정함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ktkim@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