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마시멜로와 비출산

한겨레 2022. 1.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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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숨&결] 강도희·최연진 | 대학원 석·박사 과정(국문학)

새해가 되니 세는나이의 불합리함을 토로하는 글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주제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만 나이를 쓰자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건 이제 만 나이로 세야 간신히 앞으로 몇달이나마 이십대라고 우겨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의 대부분이 비혼인데다 조금만 언짢으면 표정으로 욕을 하는 파탄난 성격인지라, 서른이 됐다고 갑자기 주위에 결혼을 채근하는 사람이 범람하는 일은 다행히 생기지 않았다. 다만 작년에 자발적 비혼모를 택한 사유리의 선택이 큰 호응을 받았던 덕인지 결혼은 안 해도 애는 한번 낳아봄 직하다는 꽤 파격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기는 했다. 육아를 ‘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을 다시 경험하는 일’에 빗대며 아이가 주는 행복을 설파하려다 내 무반응에 머쓱하게 돌아선 그들은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그들의 행복을 딱히 의심하지는 않는다. 단지 가끔씩 되묻고 싶기는 하다. “과연 아이도 태어난 걸 행복으로 여길까요?”

내가 유년을 보낸 2000년대는 자기 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가 집계 이래 최장 기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시기이다. 책에는 연습의 가치나 실천의 중요성 같은 내용도 있긴 했지만, 화제가 된 건 사실 마시멜로를 안 먹고 15분간 참아서 그 보상으로 1개의 마시멜로를 더 얻은 아이가 나중에 커서 높은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성적을 받았다는 실험 결과뿐이었다. 이 실험이 ‘놀고 싶어도 꾹 참고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가고 성공한다’는 설교의 과학적 근거처럼 인용되곤 하던 당시에 대한 내 기억은 그래서 대개 즐거운 추억보다는 하루 2000개씩 단어를 외우게 하던 외고 입시학원이나 중학교 졸업 전에 세번은 봐야 한다던 고등수학 참고서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말로, 나에게 유년은 한번이면 족했지, 두번이나 겪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 고난에 가깝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족히 십년은 더 지난 옛일을 이렇게까지 삐딱하게 회고할 건 또 뭐냐 싶겠지만 함정은 이 인내가 아직 과거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참은 것의 두배만큼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할 줄 알았던 대학 시절은 높아진 취업 문턱에 좌절한 선배들의 경험담이 괴담처럼 돌기 시작하며 지난한 취업 준비의 첫 단계로 변모했고, 술잔을 나누던 친구들은 하나둘 토익이나 자격증, 공모전을 찾아 흩어졌다. ‘스펙’이라는 말에 질색하며 탕아를 자청하던 나조차도 결국은 부랴부랴 어학점수를 따고 인턴 경험을 쌓아 취업시장에 나왔지만 이른바 ‘서류 광탈’을 맛보고 그냥 인턴하던 곳에서 소개받은 10명 남짓의 소기업에 취업했다. 당시엔 좋은 대학 나와 겨우 그런 곳에 다니느냔 잔소리도 적잖이 들었는데, 바로 몇년 뒤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어디든 채용된 걸 그저 천운으로 여기게 됐다. 좀 더 나은 일자리를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던 친구들 중 상당수는 뚝 끊긴 채용에 발만 구르고 있거나, 당장의 생계를 위해 계약직을 몇년째 전전하고 있다.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은, 실험 결과를 다시 연구해보니 사실 아이의 성취는 참을성보다는 부모의 학력이나 가정환경에 더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경험으로 먼저 체득한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내 동년배들을 ‘욜로’니 ‘소확행’이니 말로 호명하길 좋아하는 윗세대들의 생각과 다르게, 내 인생을 양껏 즐기고 싶어서이거나, 당장의 행복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겨서는 아니다. 그저 내게는 삶이 마시멜로를 멀리서 바라만 보며 견디던, 보상 없는 인내의 연속과도 같은 것이라 굳이 아이를 통해 되풀이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딱히 불행하진 않지만 태어난 걸 행복으로 여긴 적도 없는, 마시멜로 없는 유년을 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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