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생지옥에서 피는 희망꽃 (중) / 강인석

한겨레 2022. 1.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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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조선소 노동자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온통 불평불만이다. 이야기 중 절반이 욕이다. 하청업체 사장 욕, 원청 욕. 하청 사장 욕은 '돈 떼먹는다'는 것이고, 원청 욕은 주로 원청에 속한 노동자들을 향했다. 왜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사장을 욕하지 않고 정규직 노동자를 욕하는지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7년 3월23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로 노동자들이 출근하고 있다. 거제/연합뉴스

강인석 |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선소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이다. 오전 8시부터 업무가 시작되지만 많은 노동자가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 출근한다. 조선소에서 밥 먹고, 샤워하고, 작업 현장에는 7시30분 전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차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찍 출근해야 작업 준비가 되었다. 소위 깡통을 싸고(터치업용 비닐봉지), 강아지(롤러붓) 깎고, 인치붓을 자르고, 16가지 준비물을 챙겨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탱크 안에서 작업하는 도장공은 바다로 들어가는 해녀와 같았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힘들었다. 화장실 가거나 담배 피울 때를 빼곤 아침에 들어가면 점심 먹을 때나 나왔다. 탱크 속에서 하는 도장 작업은 일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유기용제 때문에 고역이다. 페인트에 경화제, 시너를 희석해야 하므로 도장 과정에서 유기용제 가스가 탱크를 가득 메운다. 방독마스크를 하고 작업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스 100% 차단이 불가능하다. 일하다 보면 눈은 따갑지, 머리는 아프지, 호흡하기는 힘들지 정말 죽을 맛이다. 어떤 노동자는 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연 2회 건강검진을 하는데 할 때마다 오줌 검사에서 발암 성분이 나왔다. 마스크를 벗고 일하는 도장공도 간혹 있는데 살려고 일하는지 죽으려고 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우조선에 취업한 지 6개월이 되던 2019년 1월25일, 도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 나갔다고 들었는데 입사 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도장공은 유기용제뿐만 아니라 고소 작업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 규정상 당연히 안전벨트를 차고 일을 해야 하지만 무거워서 잘 차지 않으려고 한다. 평소 고소 작업을 할 때 항상 위험을 느끼고 일했는데 실제로 노동자가 죽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섬뜩했다. 조선소에서 일한 3년3개월 동안 동료 노동자들이 추락 사고로, 심정지로, 더위로, 용접하다가 죽었다. 일부는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으나, 어떤 노동자의 죽음은 개죽음이 되기도 했다.

제법 조선소 노동자들과 친해지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온통 불평불만이다. 이야기 중 절반이 욕이다. 하청업체 사장 욕, 원청 욕. 하청 사장 욕은 ‘돈 떼먹는다’는 것이고, 원청 욕은 주로 원청에 속한 노동자들을 향했다. 왜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사장을 욕하지 않고 정규직 노동자를 욕하는지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차별은 분단의 벽처럼 공고하고 단단했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한테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하청 노동자는 그들이 수십년간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하고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투쟁하다가 죽어간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삶과 비교해서 너무 큰 차별이 있기에 거의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조선소는 활황기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도장공도 한 달에 500만~7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내가 받는 임금은 1공수(조선소에서는 하루 일을 1공수라고 함)에 12만5000원이다. 30일 일하면 세전 375만원이다. 거기다가 1시간 잔업하면 1만5000원이니 하루 4시간씩 30일 하면 180만원. 합치면 555만원이다. 월 500만원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밤 10시까지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당시에는 최저 시급이 훨씬 적었으니 한 달에 몇 시간 일했을까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조선업 위기라는 요즘 그것도 지난날 추억이 되어버렸다. 일이 없어 하루 8시간 근무에, 잔업 0, 토·일요일은 휴무니 한 달에 20공수, 임금 200만원 안팎이다. 심지어 무급인 여름휴가나 명절이 끼어 있으면 월 150만원 정도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위험구역에서 일하지, 유기용제에 노출되어 서서히 죽어가지, 인간 대우를 받기는커녕 중세 시대 노예처럼 살아야 하지, 하청 노동자들이 “조선소는 생지옥이다”라고 하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 생지옥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모습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조선소 안에는 수십 개의 식당과 샤워장이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서로 먼저 먹으려고 뛴다.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쫓아가는 동물들처럼. 수십, 수백명이 이용하는 샤워장 바닥에는 수건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수건함이 있지만, 그냥 자기만 닦고 바닥에 던져버린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것이 1도 즐겁지 않고, 대우조선에 대한 소속감은 1도 없다. 하루 잘 개기다가 살아 나가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 중편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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