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에 대한 해리스 전 대사의 그릇된 인식

한겨레 2022. 1.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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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종전선언으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는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던 전직 주한대사의 발언으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첫째, 해리스 전 대사는 이미 '정전협정'이라 불리는 실질적인 종전선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종전'과 '정전'의 개념을 혼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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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19일 오전 열린 8회 한미동맹포럼 강연에서 해리 해리스 당시 주한미국대사가 화상으로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한미동맹재단 제공 영상 갈무리

[왜냐면]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최근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종전선언으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는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던 전직 주한대사의 발언으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세 가지 점에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해리스 전 대사는 이미 ‘정전협정’이라 불리는 실질적인 종전선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종전’과 ‘정전’의 개념을 혼동한 것이다. ‘종전’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비핵화·군비통제 등을 통해 항구적 평화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지닌다. 이에 비해 ‘정전’은 야전군 사령관이 교전을 잠시 중단하고 충돌과 재개전을 방지하는 현상유지적 개념이다. 따라서 정전협정 아래 한반도는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쌍방은 군비통제보다는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를 통해 억지력을 키우고 더 나아가 대응타격 능력도 구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단기적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전쟁의 공식적 종결이 필요했고, 이에 정전협정 4조 60항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을 협정 발효 후 3개월 안에 소집할 것을 규정하였다. 실제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외국군 철수, 한반도 통일 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전상태의 종식과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이다. 종전선언은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해리스 전 대사는 종전선언의 효용성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종전선언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법적·안보적 현상 변경을 수반하지 않고, 경제적 비용도 들이지 않으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관한 대화를 촉진하는 실용적 접근이다. 법·제도적 장치인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정전협정이 유효하고, 한미 연합 방위태세도 유지된다. 따라서 종전선언 자체가 안보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북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촉진하여 평화의 입구를 여는 의미가 있다. 최근 프랑스 상원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한반도는 69년간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이어오며, 반복되는 군사적 긴장과 불필요한 군비경쟁에 놓여 있다”며 “남북한 주민들의 공포를 유발하고, 세계평화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하원에서는 한반도 평화 법안도 발의되었다. 종전선언의 당위성과 유용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해리스 전 대사는 한반도의 평화적 현상 변경보다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전체제가 수십년간 훌륭하게 잘 작동해왔다는 해리스 전 대사의 말을 듣자니, 그는 불안정한 냉전질서가 유지되길 원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일각에서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적절한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 지속을 통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주한미군, 유엔사의 궁극적 목적은 정전의 정태적 유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있다.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자산이지만 한반도 평화 달성을 위한 잠정적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리스 전 대사는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를 망각하고 주한미군, 유엔사의 유지 자체를 한미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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