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

한겨레 2022. 1.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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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서울에서 40여년, 런던에서 10년6개월 살았다. 비인가 대안학교 교장 노릇 하느라 최근 5년간 산골 생활을 했다. 그 경험이 사물을 달리 보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도회지 사람들은 15세기 사람들과 비슷하다. 자신이 ‘평면 지구’ 위에 사는 것으로 알았기에 먼바다로 항해하면 추락사할 거라 믿었던 중세인들 말이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탈서울’이란 곧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로 각인돼 있다.

시골에 살면 생활의 편리를 돕는 망에서 멀어진다. 우리 선고리 마을에서는 관정 물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갈수기에 발생한다. 눈이 오지 않는 겨울철이나 강우량 적은 계절에 수량이 부족해서 며칠씩 물이 끊긴다. 동네 방송 하기 전 마을 이장의 목소리 가다듬는 마이크 잡음이 확성기를 통해 들릴 때마다 가슴부터 철렁한다.

엘피(LP)가스는 얼마 전 20㎏ 한통을 4만6천원에 샀다. 면 전체에서 딱 한 업소가 영업하고 있는데, 배달이 밀렸을 때는 한동안 기다려야 한다. 겨울철이 다가올 무렵 난방용 등유를 보일러 연료탱크에 채워둔다. 연말에 31만원어치를 넣어 뒀는데 실내 온도를 15~16도로 낮춰두고 살아도 2월 초쯤 한번 더 배달시켜야 이 겨울을 날 것이다. 산간 지역이어서 에프엠(FM) 라디오 신호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 충주나 제천 시내로 오가는 버스는 하루에 서너대뿐이다.

이렇듯 삶의 핵심 요소들이 허술한 망 한가운데 놓여 있다. 도회지는 고도의 편리성을 경제적으로 세련되게 직조한 공간이다. 그곳을 벗어나 불편함과 마주할 때 그 고마운 사실을 인지한다. 그러하니 8861㎞ 떨어진 서울-런던 사이의 격차보다는 불과 171㎞ 거리 안에 있는 서울-덕산면 간 괴리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어느 순간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몸이 도시에서의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다. 회의하러 잠시 들른 서울. 목적지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가의 아케이드가 혼미하다. 뭐든 사야 할 것 같았다. 좌우로 펼쳐진 매대 앞에 서면 정작 무엇을 사야 할지 먹먹하다. 덕산면에서는 ‘다모아’ 종합상사와 ‘대림마트’ 그리고 ‘흥원철물’ 세군데에서 생필품을 해결할 수 있다. 여긴 왜 이렇게 현란하고, 물건들은 넘쳐날까. 휴식 시간에 대한 갈망을 퇴근길 교통체증에 고스란히 내어주면서 다들 어찌 그렇게도 잘 견디면서 살아낼까. 50여년간 대도시에서 보낸 시간이 내겐 되레 부박한 떠돎이었다. 궁벽한 산골 월악산 자락에서 나는 이제야 정신의 태반에 탯줄을 내린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생활 세계의 가장 변두리에서 우리나라를 조망해보니 도시와 농촌이 지나치게 불균등하다. 우리나라에는 나를 포함해 아직 465만명의 ‘면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 가운데 농가 인구가 230만명이고, 곡물 자급률은 21%로 떨어졌다. 나는 교육자로서 학교라는 삶터가 있기에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지만 농사를 지으며 생업을 유지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우리 학교 출신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와 한번 살아봄직한 지역공동체가 되도록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다. 작년에는 행정안전부 사업에 공모하여 마을공방 하나 짓는 일을 성사시켰다. 싼값에 임대 가능한 열여덟채의 공동사회주택 짓는 지원사업에서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모 사업의 문턱이 낮으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또 기회 생기면 되든 안 되든 다시 덤벼볼 예정이다.

땅이 넓고, 공간은 탁 트여 있되 사람이 드문드문 퍼져 있는 지역에서 한번 살아보라. 뜻을 가지고 뭔가를 시도해보려 할 때 가장 귀한 존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사람이 어떤 공동체로 걸어 들어온다는 일은 그 자체가 희망이고, 새로운 연대의 출발점이다. 사람이 귀한 가장자리에서 대안적 문명이 발생한다. 새로운 공간을 ‘찢어서’ 열어놓을 때 바로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른 세상을 꿈꾸며 오붓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스탄불>의 저자 오르한 파무크가 떠오른다. 기름기 쪽 빠진 그의 덤덤한 진술이 어찌나 마음을 강타하는지. 그는 말한다.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 파무크의 언어를 양탄자 삼아 몇년 뒤에 그 도시를 탐방했던 기억이 새롭다. 전에 없던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사업은 사람의 운명과 성격을 좌우한다. 그게 새로운 교육 아니고 또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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