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도마 위의 방역 패스
백신에 대한 비합리적 불신 다시 커져
선제적 방역 혼선 없도록 법원 판단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코로나 백신 관련 가짜뉴스는 알고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개발 단계에서 실험용으로 코로나 백신을 맞은 쥐들이 2년 지난 지금 모두 죽었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 백신이 지금은 잠시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아도 결국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이 이야기는 언뜻 오싹하게 들린다. 하지만 허탈하게도 애초 실험쥐의 수명은 2년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성인 백신 접종률이 95%여서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사그라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청소년 접종과 성인층 추가 접종률을 높이는 등의 목적으로 도입된 방역 패스에 반대해 소송을 벌이는 단체들이 늘고 있다. 최근 학원, 스터디카페 등에 대한 법원의 방역 패스 정지 가처분 결정을 이끌어낸 단체들이 판결에 앞서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의사는 "코로나 백신 배양액 속에서 미생물들이 다량 발견됐다"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했다. "접종 뒤 부작용이 심각하다" "백신의 예방 효과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아닌 주장도 난무했다.
방역 패스가 대형마트 등에 확대 적용된 지난 10일에는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한 단체가 마트에서 시위를 벌이며 "백신 미접종자는 숙주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묻지 말고 그냥 맞아? 너나 실컷 살인 백신!" 같은 과격한 구호를 외쳤다. 이 단체는 소식지에서 전국의 백신 사망자가 1,400명에 이른다며 이를 "유전자 약물 생체실험 피해" "세월호보다 끔찍한 학살"로 부른다. 유흥업소 등을 제외한 모든 시설의 방역 패스 중단을 요구하며 진행 중인 또 다른 소송의 원고들 역시 백신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방역 정책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다. 기본권 제한을 수반하는 만큼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인권 침해는 최소화해야 한다. 방역이 납득 가지 않는다면 소송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런 문제 제기로 정책의 합리성이나 인권과 조화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방역의 질을 높이는 계기도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소송과 시위 대열에 앞장선 이들이 합리적 비판보다는 백신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에 갇힌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반론을 제기할 자유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이 방역 패스 대상 업소마다 일일이 합당한 근거를 확인하는 것은 가처분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절차일 수 있다. 다만 방역 패스 허용 여부를 그것으로만 한정해 판단한다면 일정한 방역 기준에 따라 선제적으로 코로나에 대응하는 능동적인 행정에는 상당한 제약이 불가피해진다.
여전히 하루 4,0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오고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숫자가 높은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판단의 대전제여야 한다. 거리 두기 단계 조정에서 보듯 코로나 방역 정책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상황이 개선되면 언제든 탄력적으로 조정될 임시 조치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코로나 상황 전반을 개선해 이런 인권 침해 논란이 불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데 법원이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100인 이상 사업장에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독일은 전 국민 백신 접종 의무화를 3월 의회 표결에 부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방역 패스가 없으면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한다. 오스트리아와 그리스는 백신 미접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싱가포르는 미접종자를 코로나 무료 치료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들이 인권에 무관심해서, 비과학적 주먹구구 행정을 펴는 나라여서 우리보다 한참 강도 높은 방역 대응에 나선 것이 아니다. 법원이 불필요한 기본권 제약을 용인해서는 안 되지만 형식 논리에 갇혀 감염병 위기 대응에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 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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