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전세 연장해준다더니 "실거주하게 나가"..법원은 누구 손 들어줄까?

박찬근 기자 2022. 1.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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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7월, 임대차보호법 중 가장 강력한 '계약갱신청구권' 관련 법률이 시행된 이후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입자들 입장에선 최근 치솟는 전셋값에 보증금 5%만 올려주고 2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겁니다.

그럼에도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면 집을 비워줘야 하는, '실거주 시 갱신 청구 불가' 조항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비싼 보증금의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세입자들도 흔히 볼 수 있죠. 심지어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 말이 거짓말 같아도, 그걸 입증하는 건 세입자 몫이라 일단 집을 비워줘야만 하는 현실을 어제 8시 뉴스에서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 관련 기사 :  2022.01.11 8뉴스 "집주인 실거주 입증, 세입자가 해야"
[ https://bit.ly/3KeFmro ]


오늘은 조금 다른 사례에 대한 법원 판결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전세 기간을 연장해준다던 집주인이 만기 전 실거주하겠다고 번복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판결 취지에 영향 주지않는 세부 사항들을 아주 조금 고쳐썼습니다.

경북 경산시에 사는 김 모 할머니는 자기 소유로 거주 중인 경산 아파트 말고도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 더 갖고 있습니다. 남편 직장, 친구들이 다 경북에 있다 보니, 서울 아파트는 사놓고는 세만 주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던 2021년 3월 8일, 서울 세입자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옵니다. 전세 만기가 4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안녕하세요, OOO 아파트 세입자입니다. 이번 7월이 만기인데 전세 연장을 하고자 합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2021.3.8.)

집주인 김 씨는 다음날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7월 재계약 때 현재 보증금 6억 8천만 원에서 5% 다시 올려주시고 계약서를 다시 쓰겠습니다." (2021.3.9.)
 
다음날 김 씨는 세입자로부터 알겠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습니다. 2주택자인 김 씨가 세금을 줄이려고 바뀐 부동산법을 공부하다 보니, 1세대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기보유 특별공제에도 지난해부터 실거주 조건이 붙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매도 시점 기준 1주택자라면 장기 보유만 하더라도 최대 80%의 양도세를 공제해줬습니다. 하지만 2021년 1월 1일부터는 보유 기간 공제 분이 최대 40%로 줄어들고, 실거주 기간에 따라 추가 공제가 이뤄지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놓고 갖고만 있어선 안 되고, 실제로 거주한 기간을 쌓아야 나중에 팔 때 양도세를 줄일 수 있게 된 겁니다. 설상가상 내년부터는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 때 다주택기간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있단 기사도 읽게 됐습니다. 부랴부랴 경산 아파트를 처분해 1주택자가 된 김 씨는 세입자에게 이런 카톡 메시지를 보냅니다.
 
"죄송합니다. 전화 한 번 드릴까 했는데 세금 때문에 아무래도 제가 그 집에 들어가 살까 합니다. 양도소득세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직 기간이 4개월 정도 남아 있으니까 다른 집을 한 번 찾아봐 주세요. 죄송합니다."(2021.3.24.)

원래, 집주인은 전세 만기일 6개월 전에서 2개월 전 사이에 계약 갱신 거절을 통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세입자는 다시 이런 카톡 메시지를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번복하시는 문자를 받고 답변이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사 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계약 기간 연장해주시고 그 다음에 들어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2021.3.30.)

결국 '집을 비워 달라', '못 비워 준다'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실랑이로 번졌습니다. 급기야 집주인은 '실거주할 목적이니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내용 증명까지 세입자에게 보냈습니다. 당초 설정한 전세 계약 기간이 다 지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까지 넘어오게 됐습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법원은 세입자 손을 들어줬습니다. 서울 중앙지법 86민사단독 김상근 판사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상대로 집을 비워 달라며 낸 건물 인도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1심 판결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전략) 주택임대차계약의 갱신과 관련하여 이와 같은 조항들이 규정된 취지는 기본적으로 주택 임차인의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임대인의 사유 재산권 제한 사이의 형평을 도모하기 위하여 임차인이 계약갱신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횟수를 1회로 제한하면서 (후략)"

그러니까 임대차보호법의 취지 자체가 임대인보다는 임차인의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갱신 계약이 성립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이 부분입니다.
 
"(전략) (세입자인 피고는) 계약갱신 요청을 하였고 원고는 다음날 보증금 5% 증액 조건으로 갱신요청 수락 의사를 표시하였으며 2021.3.10. 피고가 제시한 보증금 증액 조건을 수용하는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중요사항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져 갱신약정이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후략)

서로 계약을 갱신하겠다는 의사를 모았고, 집주인이 먼저 제시한 5% 증액 조건을 세입자가 받아들인 시점에서 갱신 계약이 성립했다고 본 겁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선 이제 집주인이 번복할 수 없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재판부 답은 이렇습니다.
 
"(전략) 갱신 합의는 원고의 자발적 의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원고가 갱신거절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피고의 갱신 요청을 수락하는 과정에서 피고의 거짓이나 은폐, 기타 부정한 방법이 개입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나아가 원고가 실거주 이유로 주장하는 양도소득세 문제는 이미 이루어진 갱신 합의를 번복하여 피고의 갱신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원고가 실거주 목적을 이유로 갱신 거절 통지를 한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후략)"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계약 갱신에 합의했고 합의 과정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을 속이거나 강압적인 방법을 쓴 게 아니라면, 집주인의 착오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는 번복이 안 된다는 판단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전략)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적법하게 갱신되어 2023.7.을 기간만료일로 하여 존속 중이라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임대차 계약이 기간 만료로 종료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 (후략)"

이 판결 이후 세입자는 지금도 살던 전셋집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명시적으로 전세 만기 연장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이후 집주인의 번복은 효력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는 판결입니다. 사실 비슷한 분쟁 사례는 제 주변에도 많지만 소송의 금전적, 정신적 비용을 감안하다 보면 정작 법원까지 찾아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제 좀 꺾이는 것 같다는 소식에도 이미 감당하기 어려워져 버린 집값과 전셋값. 전세 들어 살던 집이 만기를 앞두고 있으시다면 이런 판결을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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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근 기자ge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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