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실종 · '1박2일' 무단외박 감싸주신 '큰 사랑' 깨달아

기자 2022. 1. 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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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합니다 - 부모님에게

대학 시절 저는 매달 말 무렵 ‘부모님 전상서! 저 장남은 아버지와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서 본가에 보냈습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전화하는 것보다 편지를 쓰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한 저는 매달 하숙비 등 생활비를 포함한 일종의 ‘FM장학금’을 올려보내 달라고 SOS를 친 셈이죠. 그때마다 부모님은 타지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넉넉하게 ‘향토장학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부모님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4박 5일’ 실종사건과 ‘1박 2일’ 무단외박 해프닝을 계기로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컸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 푹푹 찌는 말복 더위에 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갔다가 길을 잃어 졸지에 ‘미아’가 된 적이 있습니다. 엄마한테 생떼를 부려 버스를 타고 제법 큰 재래시장에 가게 됐는데 난생처음 온지라 모든 것이 제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특히 장난감가게에서는 꿈에서도 못 본 물건이 널려 있었는데 장난감 구경은 엄마의 존재를 잊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울면서 엄마를 찾아 헤매는 저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4박 5일 동안 보살펴주셨습니다. 아이가 없던 아주머니는 저의 재롱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뒤늦게 파출소에 신고했답니다. 부모님은 실종 신고를 하고 백방으로 저를 찾아다니느라 엄청나게 고생하셨습니다. 엄마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저를 꼭 껴안아 주셨습니다. 그때 느꼈던 엄마의 품은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했습니다. 이 일을 치른 후 저는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은팔찌를 끼게 됐답니다.

제가 대학교에 진학하던 시절엔 학력고사를 치르고 난 후 내신시험을 봤습니다. 저는 끝까지 내신시험도 잘 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설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휴식시간에 농구를 하다 넘어져 오른팔이 골절되는 바람에 깁스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내일이 시험인데 말이죠. 저는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시험 답안지를 메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자취하는 반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제의하더군요. 저는 고교 학창시절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흔쾌히 가겠다고 해버렸습니다. 친구의 비좁은 자취방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는 바람에 제 생애 첫 무단 외박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집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습니다.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에 들어갔더니 집안 분위기가 싸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했더라면 아버지의 ‘회초리 세례’는 없었을 텐데….

다 큰 아들에게 말로 타일러도 되는데 회초리까지 들었냐고 언성을 높이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사태가 커지자 저는 종아리가 시리고 아파 연고를 대충 바르고 일찍 잤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종아리에 액체 같은 것이 뚝뚝 떨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당신들의 눈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밤새워 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우셨습니다. 저는 또 한 번 부모님의 충만한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칠순 잔치 대신 마라톤을 완주하셨는데 이젠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 허리가 구부러지고 청력도 약간 불편함을 느끼십니다. 그리고 엄마는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시느라 속마음은 숯검정이 되도록 타버렸을 것입니다.

삼 형제를 키우느라 온갖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이제는 자식 걱정 덜어내고 마음 편하게 지내세요”라는 말을 건네봅니다. 사랑합니다∼∼∼ 부모님.

불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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