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신격호 동생 신준호도 퇴진.. 1세 시대 마감하는 '범롯데家'

윤희훈 기자 2022. 1. 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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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신격호 회장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대표이사 사임
형제간 갈등으로 등 돌렸던 '범롯데가'
삼남 故신춘호 "가족간 우애하라" 유언 남겨
'롯데-농심' 관계 회복 조짐..3세 승계 등 공통 숙제도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과 농심 신춘호 회장이 별세한 데 이어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범(汎)롯데가’ 1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

범롯데가는 2017년 신 명예회장의 총괄회장직 사퇴 후 그룹 전권을 쥐게 된 신동빈 롯데 회장을 필두로 신동원 농심 회장, 신동환 푸르밀 사장 등 본격적인 2세 경영 시대를 열게 됐다.

범롯데가 직계 방계 가족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신영자 전 이사장, 신동주 회장, 신동빈 회장, 장선윤씨,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신동윤 부회장, 신동원 회장, 故 신춘호 농심 회장, 신준호 푸르밀 전 회장.

◇ ‘범롯데가’ 1세대…갈등과 반목의 연속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5남5녀 집안의 장남이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뒤, 한·일 수교를 계기로 국내로 들어와 형제들과 함께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형제들의 일탈과 사업 방향에 대한 이견 차이로 갈등을 빚다 결국 갈라서게 됐다.

농심이 대표적이다. 형제 중 삼남인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은 일본 롯데 이사를 지내며 신 명예회장을 돕다가 1965년 롯데공업을 차렸다. 라면 사업을 하겠다는 동생의 구상에 신 명예회장은 반대했다. “누가 사서 먹겠나. 하지마라”는 것이었다. 이에 신춘호 회장은 “형이 안된다 한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신 명예회장은 끝까지 반대했다. 회사의 이름에 ‘롯데’를 쓰는 것도 반대했다. 결국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이 때의 일로 두 형제는 선친의 제사마저 따로 지낼 정도로 관계가 나빠졌다.

그래픽=이은현

신춘호 회장은 2020년 1월 신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에도 빈소를 찾지 않았다. 신춘호 회장을 대신해 장남 신동원 당시 농심 부회장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푸르밀의 신준호 전 회장도 신 명예회장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 대표를 지낸 신준호 전 회장은 1996년 롯데햄·우유 부회장에도 올랐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때 부동산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 양평동 부지(현재 롯데제과·푸드·홈쇼핑부지)를 신 명예회장과 자신의 이름으로 나눠 보유했는데, 이에 대해 차명이 아닌 실제 소유권을 주장하며 형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소송에서 진 신준호 전 회장은 그룹 내 모든 직위가 박탈됐다.

신준호 전 회장은 결국 2007년 계열 분리 과정에서 독립했다. 당시 롯데햄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100%를 인수한 그는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신 명예회장이 롯데 브랜드 사용을 막았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이후 2010년 롯데삼강이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하며 우유 사업에 재진출했다. 사업을 매각한 후, 다른 기업을 인수해 동일한 업종에서 경쟁을 펼치게 된 것이다.

1973년 3월 문을 연 동화면세점도 롯데의 방계 기업이다. 신 명예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이 오너다. 신 대표의 남편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이다. 사명에 ‘롯데’라는 명칭이 들어가지만 롯데그룹의 지분은 없다. 과거 신 명예회장은 김 회장이 ‘롯데’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 2대로 이어진 형제 갈등...신춘호 “가족 간에 우애하라” 유언 남겨

선대에서 벌어진 형제간 갈등은 2대에서도 이어졌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남과 차남간 갈등이다. 차남인 신동빈 롯데 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됐다. ‘롯데 왕자의 난’으로 불리던 당시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것은 신동빈 회장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의 경영권을 모두 장악했고, 신동주 회장은 지난달 상속세 마련을 위해 롯데지주(004990)와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신동주 회장이 보유했던 롯데지주의 지분은 1%가 되지 않았지만, 이를 정리하면서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대의 갈등으로 인해 관계가 서먹했던 사촌 간 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신춘호 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회장은 조화로 조문을 대신했다. 당시 두 회장은 일본 체류 상태로 귀국 시 자가 격리 절차로 인해 직접 조문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상주였던 신동원 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보낸 조화를 영정사진 바로 옆에 비치하며 화해 무드를 보여줬다.

신춘호 회장도 별세 직전 유가족에게 “가족 간에 우애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형제끼리 경영권 다툼을 하지 말고, 범롯데가 사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는 당부로 해석됐다. 재계에서는 “맏형과의 관계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유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신춘호 회장은 일찌감치 지주사 지분을 차등 배분하는 방식으로 후계를 정리하며 경영권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농심그룹은 지난해 메가마트와 우일수산에 대한 계열분리 신청을 해 공정위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신동윤 부회장이 경영하는 율촌화학도 계열 분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신동빈 회장과 신동원 회장은 친목 모임을 함께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 협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농심은 미래 사업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비건 레스토랑 ‘베지가든’을 오는 4월 잠실 롯데월드몰에 연다. 업계에서는 베지가든 레스토랑 출점을 계기로 롯데와 농심 간 협업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미래 먹거리 고민하는 2세…3세 승계 준비도 숙제

경영 키를 쥐게 된 2세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경쟁 격화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신동빈 회장은 2020년부터 계열사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쇼핑(023530)의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했고,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작년말에는 이사회를 열어 비즈니스 유닛(BU) 체제를 폐지하고, 유통·화학·식품·호텔 등 4개 산업군(HQ, 헤드쿼터) 체제로 시스템을 정비했다. 특히 롯데백화점 대표에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롯데지에프알 대표를 내정하는 등 순혈주의 타파를 보여주는 인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동빈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이제 비즈니스 정상화를 넘어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도전에는 빠르고 정확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HQ체제로 개편한 것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 우리 조직의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푸르밀은 신동환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계속 실적이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2016년 매출 2700억원에 5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뒀던 푸르밀은 2018년 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20년 매출은 약 1900억원, 영업손실은 113억원을 기록했다.

신동원 농심 회장도 고민이 많다. 창업자인 故 신춘호 회장은 56년간 농심을 이끌며 국내 1위 라면 기업으로 키웠다. 신동원 회장은 선대 회장이 일군 사업을 물려받아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는 한편 신사업을 발굴해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3세 승계 준비 작업도 한창이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일본명 시게미쓰 사토시)은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씨도 2019년 농심에 입사한 후 경영기획팀 대리와 부장을 거치며 예산 및 기획 업무를 맡았다. 작년말 발표된 2022년 임원 인사에서 구매 담당 임원으로 승진했다. 신 상무는 경영 수업을 받으며 농심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신동환 사장은 슬하에 재열, 찬열 2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재열군과 찬열 군은 각각 푸르밀의 지분 4.8%와 2.6%를 보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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