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knowledge] 당신이 몰랐던 잉글랜드 FA컵 이야기 30선 (1편)
[포포투=Brian Beard]
역사상 가장 오래된 축구대회인 잉글랜드 FA컵이 창설 150주년을 맞았다. 눈부신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축구 전문가 브라이언 비어드가 들려준 오래된 FA컵 이야기에는 수많은 비하인드가 숨어 있다.
그간 우리는 FA컵에서 숱한 충격과 놀라움의 순간을 목도해 왔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안경을 썼던 유일한 선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가? 대회 트로피가 언제 도난당했는지 알고 있었는가? 아니면 닐 러독이 대회 결승전에서 패배한 충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알고 있었는가?
여기, 당신의 궁금증을 풀어 줄 30가지 이야기가 있다. 1편에서는 15개의 일화를 먼저 소개하겠다.
1. 슈퍼 테드
전 마게이트FC 골키퍼인 시크 브로디는 본머스의 테드 맥두걸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1971년 11월 20일, FA컵 1라운드에서 브로디는 맥두걸에게만 무려 9골을 내줬다. 결국, 이날 경기는 본머스의 11-0 대승으로 끝났다.
안타깝게도 브로디의 불행은 계속됐다. 하루는 날이 너무 밝아 플랫캡을 집어 들었다가 그 안에서 수류탄을 발견했다. 또 한 번은 경기장에 난입한 잭 러셀 테리어종 개에게 물려 다리가 부러질 뻔했다.
한 경기에서 9골을 터뜨린 맥두걸은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올랐고 그로부터 1년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브로디에게 잊지 못할 악몽을 선사한 맥두걸은 훗날 "내가 11골을 넣었어야 했는데 9골에 그쳐 실망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2. 재경기 멈춰!
맥두걸의 무자비한 폭격 후 이틀 뒤에 FA컵 역사상 가장 길었던 동점이 마침내 끝이 났다. 앨브처치FC와 옥스퍼드 시티FC는 1라운드 진출을 놓고 17일 동안 무려 6번의 경기를 펼쳤다. 심지어 중간중간 리그 경기까지 치러야 했다. 재경기는 형평성을 위해 중립 구장에서 진행됐고 마침내 앨브처치가 빌라 파크에서 1-0으로 승리했다.
당시 경기를 뛰었던 그레이엄 올너는 "우리는 결국 상대팀과 이름을 부르는 친한 사이가 됐다"며 "경기가 있는 날엔 '빌, 안녕?', '피트, 잘 지냈어?' 같은 인사를 주고받았다"는 유쾌한 일화를 전했다.
3. 만든 사람이 임자
만약 축구에 슈퍼 히어로가 있다면, 찰스 윌리엄 앨콕은 분명 숨겨둔 가면과 망토를 꺼낼 것이다. 그는 FA컵의 창시자이자 1872년 FA컵 초대 우승을 차지한 원더러스FC의 주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해 11월 앨콕은 부상으로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놓쳤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정한 세계 최초의 국제 경기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맞대결에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을 것이다. 게다가 해당 경기는 그가 잉글랜드 FA의 비서관으로서 직접 제안한 경기였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을 것.
4. 소드의 법칙
소드의 법칙. 영국판 머피의 법칙이다. 맨유와 스코틀랜드의 전설 데니스 로는 1961년 맨체스터 시티 소속으로 루턴 타운FC에 6골을 퍼부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를 20분 남겨 둔 후반 24분 폭우로 인해 경기가 중단됐다. 설상가상으로 재경기에서 루턴 타운에 1-3으로 패배하며 대회에서 탈락했다. 당연히 로의 6골도 기록에 남지 못했다.
5. 웸블리로 따라와
1968-69시즌 FA컵 결승전에서 맨시티와 레스터 시티가 만났다. 그러나 정작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 건 두 영국 방송사 ITV와 BBC였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선수 독점 인터뷰 계약이었다. ITV는 결승전이 치러지기 전에 독점 인터뷰를 대가로 맨시티에 상당한 자금을 약속하며 선수를 쳤다. BBC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결승전 당일 BBC의 스튜어트 홀은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가는 길에 맨시티의 스타 선수 프랜시스 리와 마이크 서머비를 가로막고 펍에서 생중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소식을 접한 ITV는 곧장 복수에 나섰다. 분노한 ITV 기술 담당자들은 현장인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BBC 제작진들에게 주먹질을 날렸다. 홀은 "대단한 광경이었다. ITV 제작진과 우리 제작진은 서로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6. 키네어드의 수모
귀족 계급 출신의 아서 키네어드는 당대 최고의 축구 스타였다. 특히 FA컵 결승전 9회 출전이라는 그의 기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다소 불명예스러운 기록까지 안아야 했다.
원더러스FC 시절 키네어드는 1877년 FA컵 결승전에서 옥스퍼드 대학 AFC를 상대로 자책골을 넣으며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자책골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그는 상대 공격수의 장거리 슈팅을 수비하는 과정에서 수비 실책을 범했고 공은 그대로 골라인을 넘었다. 이날 경기는 원더러스의 2-1 승리로 끝이 났지만, 경기 종료 후 잉글랜드 FA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옥스퍼드 대학의 득점을 취소하고 최종 스코어를 2-0으로 변경했다.
몇 년 후, 키네어드는 잉글랜드 FA 회장 자리에 올라 33년간 회장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1980년대 축구 역사 전문가들이 시행한 연구로 잉글랜드 FA는 옥스퍼드 대학의 득점을 복원했다. 오늘날에는 1877년 FA컵 결승전의 공식 스코어를 2-1로 간주하고 있다.
7. 스코틀랜드 팀은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빌라 파크와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FA컵 준결승을 그리워한다. 아스톤 빌라와 셰필드 웬즈데이의 옛 명성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잉글랜드 밖에서 열린 FA컵 준결승전은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1885년, 스코틀랜드의 퀸스 파크FC는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에서 치러진 FA컵 준결승 재경기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를 3-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2시즌 연속 결승전에서 블랙번 로버스에 패하며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퀸스 파크는 아직도 FA컵 결승에 진출한 유일한 스코틀랜드 팀으로 남아 있다. 스코틀랜드 축구협회(SFA)는 1877년부터 모든 자국 리그 소속 팀의 잉글랜드 FA컵 참가를 금지했다.
8. 크리스마스의 만찬
비슷한 맥락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도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노팅엄은 네 개의 국가에서 모두 FA컵 경기를 치러 본 유일한 팀이다.
실제로 1888-89시즌에는 북아일랜드의 린필드 애슬레틱과 맞대결을 펼쳤다. 한편 린필드는 크리스마스 당일에 경기를 치렀던 유일한 팀으로, 1888년 12월 25일 클리프턴빌FC를 7-0으로 대파했다. 하필 크리스마스에.
9. 경기 시작했다 경기 끝났다
여기 속도에 관한 기록 두 가지가 있다. FA컵 역사상 가장 빠른 득점은 2001년 애슈턴 유나이티드의 가레스 모리스가 스켈머스데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기록한 4초 만의 골이다. 또한, 가장 빠른 해트트릭은 그로부터 6년 전인 1995년 낸트위치 타운의 앤디 로크가 드로일스덴FC와의 경기에서 단 2분 20초 만에 터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 본프레레 재평가
본프레레 감독의 '명언'을 재평가할 시간이다. 4골을 넣고도 3골을 넣은 팀에게 질 수 있다. 해트트릭을 자책골로 성공하면 말이다.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은 지난 2011-12시즌 FA컵 5라운드(16강)에서 리버풀에 1-6으로 대패했다. 이 과정에서 자책골로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수모를 겪었다. 혼자서만 2개의 자책골을 기록한 미드필더 리암 브리드컷도 대단했지만, 루이스 덩크도 만만치 않았다. 자책골을 넣을 당시 덩크는 아슬아슬한 가슴 트래핑, 무릎 트래핑 이후 골라인을 아장아장 넘나들며 굴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실제로 그는 아직 브라이튼에서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11. 다음엔 누가 넣을래?
1989-90시즌 FA컵 준결승에는 크리스탈 팰리스, 리버풀, 맨유, 올덤 애슬레틱 AFC가 진출했다. 맨유와 올덤 애슬레틱의 재경기를 포함한 준결승 3경기에서는 도합 16골이 터졌다. 팰리스가 리버풀에 4-3으로 승리하고 맨유와 올덤 애슬레틱이 3-3으로 비긴 뒤 재경기에서 맨유가 2-1로 승리한 가운데 독특한 득점 기록이 눈길을 끌었다. 16골을 16명의 각기 다른 선수가 넣은 것.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니까.
이후 결승에서 팰리스를 만난 맨유는 3-3 무승부를 거둔 뒤 재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이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 체제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영국 선수들로만 구성된 선수단으로 우승을 차지한 마지막 팀이 됐다.
12. 알고 보니 삼세판
불쌍한 존 홀리 에드워즈는 역사상 가장 허무한 방법으로 FA컵에서 탈락했다. 다름 아닌 동전 던지기로.
1873년, 에드워즈가 창립자이자 주장으로 뛰었던 슈롭셔 원더러스FC는 FA컵 1라운드에서 셰필드FC를 만나 0-0으로 비겼다. 이들은 재차 치러진 재경기에서도 다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두 번째 경기 후 두 팀은 레이븐 호텔로 이동해 저녁 식사를 했고, 셰필드의 총무였던 해리 워커 챔버스가 동전 던지기에서 승리했다.
150년의 FA컵 역사에서 동점을 이런 식으로 처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3. 승승장구 스탠리
스탠리 라우스 경은 1927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경기에서 국제 경기 심판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34년 맨시티와 포츠머스FC의 FA컵 결승전에서 주심을 맡았다. 해당 결승전 바로 다음 날, 라우스는 심판직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행정 분야로 진출해 1934년부터 1962년까지 잉글랜드 FA의 총무로 근무했으며 1961년 FIFA 제6대 회장에 선출됐다.
14. 할리우드 엔딩
1887년, 올드 카르투시안스FC는 FA컵 8강에 올라 프레스턴 노스 엔드FC에 1-2로 패배했다. 당시 올드 카르투시안스에는 다른 무대에서 부와 명예를 누린 선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찰스 오브리 스미스. 그는 두 번의 세계 대전 중에 할리우드 배우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훗날 믿고 보는 톱스타가 됐다.
또한, 스미스는 잉글랜드가 유일하게 우승을 차지했던 크리켓 테스트 매치에서 주장을 맡았으며 로스앤젤레스에 외국인 배우들을 위한 할리우드 크리켓 클럽을 설립하기도 했다.
15. 도둑 잡아라
1996년 FA컵 결승전에서 맨유와 리버풀이 만났다.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40분 에릭 칸토나가 리버풀 데이비드 제임스 골키퍼의 실수를 틈타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에 맨유가 리버풀을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나 그날의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리버풀의 닐 러독.
경기 종료 후, 리버풀의 존 반스는 칸토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리버풀의 주장과 맨유의 주장이 서로 유니폼을 교환하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러독은 반스가 샤워하러 간 틈을 타 칸토나의 유니폼을 몰래 손에 넣었다. 그러고는 지난 2013년 경매에 부쳐 1만 5,000파운드(약 2,443만 원)에 팔아 버렸다.
훗날 반스는 "러독은 내가 샤워하러 간 사이에 '내가 가져가야지'라고 생각한 것 같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번역=유다현 에디터
사진=포포투UK,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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