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바꾸는 교육정책 제안]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의 인재 육성 방안

이용훈 UNIST 총장 2022. 1. 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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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키워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비대면의 일상화를 가져왔고 산업 판도를 바꾸고 있다. 콘텐츠와 문화가 주력 성장 동력이 됐지만 교육의 기여는 미미하다. 교육이 바뀌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다.

현장 교육전문가들의 제안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간절함’ 때문이다.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된다면 한국교육의 질적 개선을 가져올 것이다. 현장에서는 21대 대통령 선거를 60여일 앞둔 현재까지도 유력 대선후보들의 교육공약이 무엇인지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동아일보-동아닷컴은 9회에 걸쳐 ‘미래를 바꾸는 교육정책 제안’ 시리즈를 온라인으로 연재한다. 현장 교육전문가 9명이 필자로 나서 차기정부에 교육정책을 제안한다. 5일부터 17일까지(주말 제외) 이어지는 시리즈는 교육일반, 대학정책, 민관협업 등 3부로 구성 될 예정이다.》

이용훈 UNIST 총장


⑥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의 인재 육성 방안

과학기술이 격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자율주행, 가상현실(VR) 등 최신 기술들이 우리의 일상을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선 백신과 치료제 개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 기술경쟁도 치열하다.

인류는 고비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며 진보해왔고, 그 선두엔 언제나 획기적인 과학기술 혁신이 있었다. 그 주역은 탁월한 과학기술자들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최고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것, UNIST와 KAIST 같은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맡은 역할이다. 국가간 기술패권 경쟁에 맞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소임이다.

최고 인재의 ‘이공계 기피’가 현실

현실은 어떤가. 매년 대학 입시 배치표 최상단을 차지하는 건 의학계열이다. 최상위 수험생 2%인 약 8000명이 의학계열로 빠져나가고 아래에 서울대 공대 주요 학과들이 있다. ‘최고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다. KAIST와 UNIST도 비슷한 처지다. 학사과정 신입생의 약 20%가 1~2년 사이 중도 이탈한다.

‘이공계 아이돌’ 성공 사례 나와야

왜 그럴까. 성공적인 롤(Role)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BTS, 손흥민, 김연아 같은 예체능계 아이돌의 성공사례가 이공계에서도 나와야 한다. 기술창업에 성공한 아이돌 스타가 나오고, 큰 부자가 되는 사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AI/SW 분야는 성공 기회가 많이 열려있다. 학사과정에서부터 조기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교육과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공계 학사과정 혁신이 시급한 과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시급한 과제는 이공계 학사과정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특히 이공계 첫 1년은 지루하고 고루하다. 고교 때 배운 기본 과목, 즉 물리 화학 생물 등을 조금 심화해 답습하듯 가르친다. 교재는 대개 50년 이상 오래전 것들이다. 수업은 여전히 강의 중심의 수동적 교육이고, 실험 역시 ‘요리책(cookbook) 따라하기’ 방식이 대부분이다. 현재의 학사과정으로는 과학기술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고, 최고 인재들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학사과정 혁신의 핵심은 학생 주도의 능동적 교육과 실전형 교육, 활발한 기술창업 교육, 인터넷 기반의 교육 환경 조성이다. 이미 세계적인 혁신 대학들은 학사과정부터 파격적인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알토대, 올린공대, 미네르바대, 에꼴42(ECOLE42)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고로 꼽는 MIT 역시 학사과정 혁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KAIST로 대표되는 우리의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교육은 대학원 중심 학제의 틀에 치중해 학사과정 혁신에 소홀했다.

학사과정 기초교과 선택 폭 넓혀야

우선, 기초교과목 선택 폭을 충분히 넓혀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신입생 때부터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를 폭넓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신입생은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등 최신 과학기술을 일상에서 이미 체험하고 즐겨온 세대 아닌가. 이들에게 전통 산업시대에 맞춰진 현재의 기초교과목 틀은 매력적이지 않다. 인공지능과 IT 기술의 기반이 되는 이산수학, 확률과 랜덤프로세스 등 시대와 세대에 맞도록 유연한 학사 커리큘럼을 짜야 한다. UNIST는 작년부터 이들 과목을 도입했고, 이를 계기로 기초교과목을 총 21개로 늘리면서 14개 과목을 선택으로 돌렸다. 이전엔 총 17개 교과목에 선택이 3개뿐이었다.

빠르게 배워 곧바로 도전하는 ‘실전형 교육’

빠르게 배우고 곧바로 실전 과제에 도전하는 ‘실전형 교육’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이를 ‘격투기형 교육’이라고 한다. 꼭 필요한 기본기만 익힌 뒤 링 위에서 실전을 통해 단련하는 방식이다. 실전 과제를 푸는 과정에서 부족한 이론을 심화시키고 거듭되는 실험을 주도하면서 문제 해결력을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과학기술 혁신의 속도를 앞서나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다.

대표적으로 ‘원-데이 렉쳐(one-day lecture)’ 같은 단기 집중 강좌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최신 과학기술 분야의 흥미로운 주제를 기초부터 응용까지 핵심만 모아, 이론과 실습을 함께 가르친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전통적인 계단식 강의와 대비된다. UNIST의 경우 매주 금요일마다 두 달간 진행하는 1학점 단기강좌를 작년부터 개설했다. 드론과 인공지능 등을 다룬다. 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드론과 인공지능 스터디그룹과 연구동아리를 만들어 심화학습하고 문제 해결력을 스스로 키워간다.

기술창업 통한 조기 성공 모델 만들자

기술창업을 통해 조기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UNIST의 경우 학사 졸업생 10% 정도가 기술창업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다양한 실전프로젝트팀과 글로벌 챌린지팀을 구성해 멘토 교수와 대학원생의 지도를 받으며, 산업현장의 문제 해결에 직접 도전하고, 세계 곳곳의 챌린지에 도전하도록 권장한다. 그 과정에서 개발한 창의적인 솔루션은 기술창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작년 말 현재 UNIST의 학생 창업기업 수는 60개를 넘어섰다.

과기특성화 대학의 대학원 교육은 분야별 수요에 맞는 석·박사 인력 수급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AI/SW와 반도체 분야 전문인력 수요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IT 우수인재 1만 명 양성’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탄소중립 구현기술 전문인력 즉, 화학공학, 건설, 전기 등 분야 인력 수요도 증가세가 가속화될 것이다. 기술혁신의 방향과 속도에 맞춰 박사학위 취득 기간을 단축하고, 조기 기술창업과 기술 분야 취업을 지원하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최고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해야

최고의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최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처우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우수 10% 이내의 ‘국가과학기술인’을 선정해 특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과학기술인은 5년 마다 재심사해서 처우를 높여주고, 대학 교수 정년(현 만 65세)도 늘려 연구개발에 더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젊은 과학기술 인재들이 꿈을 갖고 미래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용훈 UNIST 총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수소경제위원회 위원, 전)KAIST 교학부총장

정리=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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