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20여 기업에 주주대표소송 서한 발송..재계 "기업 벌주기"

옥승욱 2022. 1. 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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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옥승욱 기자 =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가 국내 20여개 기업에 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서한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탁위가 기금운용본부로부터 소송 권한을 넘겨 받기 전부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재계는 기업 벌주기식 행태가 시작된 것이라며 연금 사회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위는 삼성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 LG그룹 계열사, SK네트웍스, 롯데쇼핑과 롯데하이마트, GS건설, 대우건설, 현대제철 등에 주주대표소송 서한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한을 받은 곳은 과거 공정위로부터 담합 등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건설사와 철강사 등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4일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대표소송 추진 관련,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결정 주체는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담당하고,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 판단하는데, 이를 수책위로 일원화해 금년부터 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내달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수탁위가 대표소송 권한을 가진다면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기업이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은 국민연금이 지분 투자한 대부분 기업이 대상에 오른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300개사에 달하는데, 이들 모두 주주대표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상장사 경우 회사 전체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기업의 모든 판단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은 주주대표소송에 대해 '투자대상 기업의 장기적인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이를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며, 대상은 '이사 등이 기업에 대해 부담하는 모든 책임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소 조건 충족 여부, 승소 가능성, 소송 실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하나, 결국 기금운용본부나 수책위가 결정하면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고 있다. 회사 경영활동의 모든 결정이 소송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기업 임원들도 언제든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근무해야 하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이 남발한다면 기업경영이 위축돼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 소송은 기업가치 훼손 뿐만 아니라 국가 신인도도 하락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주주대표소송은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장기적인 가치 상승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제소만으로도 부정적 여론과 평판 악화 등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특히 대기업의 경우 외신을 통해 해외까지 제소 소식이 전해지면서 신뢰도 하락으로 인한 사업 피해까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지난 10일 공동성명을 통해 "수책위는 기금운용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수익률과 무관하게 정치·사회적 이해관계 및 여론에 따라 소 제기를 결정할 유인이 매우 높다"며 "경영 위축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하거나 소송에 패소하는 등의 사정으로 기금 수익률이 악화될 경우 해당 대표소송에 찬성한 자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남소방지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okdol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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