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癌보다 毛가 더 중한가

이용권 기자 입력 2022. 1. 12. 11:30 수정 2022. 1. 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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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푸어.' 과도한 의료비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는 환자를 말한다.

병원에서 수술 한 번 받으면 파산할 만큼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물론 암 환자도 산정특례제도에 따라 의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되지만, 이는 건강보험 적용 치료로 한정돼 있다.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탈모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이 후보는 절박한 암 환자보다 당장 1000만 명에 가깝다는 탈모 인구의 표를 더 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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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사회부 차장

‘메디컬 푸어.’ 과도한 의료비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는 환자를 말한다. 병원에서 수술 한 번 받으면 파산할 만큼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국내에서도 이런 메디컬 푸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저소득층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암이나 중증질환을 앓는 가족이 있다면 부유층을 제외한 누구든 경험할 수 있다. 정부가 문재인 케어를 통해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건강보험이 고가의 신약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감기처럼 치료비가 적게 드는 경증질환엔 건강보험 혜택이 크지만, 정작 치료비가 많이 드는 암이나 중증질환에 걸리면 큰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물론 암 환자도 산정특례제도에 따라 의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되지만, 이는 건강보험 적용 치료로 한정돼 있다. 첨단 신약이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이런 약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는 1회 투여 시 수백만에서 수천만 원에 달한다. 효과를 보려면 십수 차례 투여해야 하는 만큼 기본 비용만 연간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암 환자는 집을 팔아 치료한다는 게 헛말이 아니다. 암 및 난치성질환자 가족들이 정부에 신약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경제성평가가 낮다는 이유로 외면당해 왔다. 그동안 몇몇 신약 항암제가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을 통해 일부 병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기도 했지만, 이조차도 올해부터 끊어지면서 많은 암 환자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한 공약이 논란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탈모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이 후보는 절박한 암 환자보다 당장 1000만 명에 가깝다는 탈모 인구의 표를 더 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 경제성 측면에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 탈모 등에 건강보험을 지원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탈모는 건강보험 지원이 없으면 생을 마감해야 하는 질환이 아닌 데다, 파산할 수준의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탈모 스트레스가 아무리 크다 한들 생명이 오가는 암 환자의 절박성에 비할 수 있을까. 또,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암 등의 중증질환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질환이 됐다. 암 외에도 시급히 건강보험 혜택을 기다리는 중증질환은 수없이 많다.

탈모가 아니어도 건강보험은 정부의 생색내기용으로 지원돼 논란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이 건강보험을 통해 병·의원 물리치료 등을 마사지숍처럼 이용하고 있으며,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초음파도 불필요한 과잉 검사가 급증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키우고 있다. 재정이 충분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건강보험은 수년째 적자로 적립금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복지 혜택의 특성상 한번 지원을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건강보험이 선거나 정책 홍보를 위해 악용돼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이 없으면 생사를 오가는 절실한 환자에게 제대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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