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소설, 소설 같은 현실

방준호 기자 2022. 1. 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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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제1395호의 고갱이는 제13회 손바닥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어제와는 다른 세계'라는 주제 아래 쓰이고 당선한 세 편의 '문학' 작품이 담겼습니다.

어제와 다른 세계라는 같은 주제로 '기사'를 써서 싣기로 했습니다.

처절하고 막막한 그 노래들은 왜 위로가 되었을까? '우리'(<환란의 세대> )라는 단어 하나, '미래의 시선'( <흑백사진> )이라는 단어 하나에 제멋대로 꽂힌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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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한겨레21> 제1395호의 고갱이는 제13회 손바닥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어제와는 다른 세계’라는 주제 아래 쓰이고 당선한 세 편의 ‘문학’ 작품이 담겼습니다. 당선작 ‘고라니들’ ‘화이불변’ ‘불안할 용기’는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슬프고 적나라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입니다.

어제와 다른 세계라는 같은 주제로 ‘기사’를 써서 싣기로 했습니다. 당선작만큼 아름다울 자신은 물론 없습니다. 다만 대선이 있는 새해, 독자가 받아볼 첫 잡지를 (제아무리 현실이 이렇대도) 슬픔으로만 점철할 수 없습니다. 희망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수고의 지향점은 어디일지, 꿈은 무엇인지 모아 보면 어제와 다른 유토피아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요?” 2021년 한 해 곳곳에서 각자의 가치를 쥐고 분투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한테 꿈과 희망을 얘기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건 사실 우리(<한겨레21>)한테도 필요한 일 같아서요” 하고, 덧붙였습니다. 취재하고 쓰면서 노래 두 곡을 반복해 들었습니다.

활동가를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 공덕역 플랫폼에는 경찰이 무리지어 서 있습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서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합니다. 저 오랜, 줄기찬, 타당한 요구 앞에도 세상은 지지리 변치 않는구나, 싶었습니다. 같이 서서 무언가 할 용기는 없고 그저 어느새 끝난 노래를 다시, 또다시, 들을 뿐입니다. 이랑의 <환란의 세대>를 벌써 며칠째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죽게 되면/ (…)/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 약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안 먹어도 되고’ 절규하듯 노래합니다. 처절한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자고 마주 앉은 한 활동가는 “하나하나 정신없이 눈앞의 일을 해나가요. 꿈이 너무 크면 버티기 어려우니까” 하고 끝내 한숨을 쉬었습니다. 꿈이란 건 결국 안전, 존엄, 평등, 자유 같은 오랜, 줄기찬, 타당한 가치를 지켜주는 세상입니다. 그것조차 너무 커 보였습니다. 그 한숨을 못 본 척 지우고 희망의 말로 기사를 메워가면서 들은 노래는 김목인의 <흑백사진>입니다. ‘이 모든 게 전부 어디로 가는지는 시대의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시선은 마치 구름에 감춰진 아득한 산 정상처럼’ 5년 전 겨울, 촛불이 가득한 광화문에서 자주 들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듣고 싶어졌어요. 알 수 없다니 막막하고 슬픈데, 또한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기사 문장에 노래 가사를 알듯 말듯 넣고 말았습니다.)

처절하고 막막한 그 노래들은 왜 위로가 되었을까? ‘우리’(<환란의 세대>)라는 단어 하나, ‘미래의 시선’(<흑백사진>)이라는 단어 하나에 제멋대로 꽂힌 탓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시대, 그 앞에 서 있는 게 ‘혼자’ 아니라 ‘우리’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지금의 풍경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네, 그렇게 무척 비현실적인 기사를 쓰고 말았습니다. 제1395호 꿈꾸는 미래는 현실적인 소설과 소설 같은 현실이 뒤엉킨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2022년이 시작됐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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