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 디핵, "나와 닮았다는 위안..진실한 감정은 유통기한이 없어요"

2022. 1. 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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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요 마이 나이트' 음원 역주행·1위 후보
감성적 가사·쉬운 멜로디 인기요인

학교폭력 속에서 시작한 힙합
부모님과 교감하는 음악 고민
자전적 이야기 담은 진솔함
"진실한 감정선은 유통기한이 없어"
솔직한 가사의 ‘오하요 마이 나이트’로 역주행 신화를 일구며 멜론 차트를 접수한 래퍼 디핵은 올해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그는 “모든 세대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많은 세대가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진실한 감정선은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핵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잠깐 인공호흡을 해주라, 왠지 숨이 잘 안 쉬어져서 난, 날 놓을 거면 과거에 놔주라, 네가 있는 시간에서 죽어갈 거야 (중략) 내 방 천장에 그려 본, 내 우주에게 물어본, 말은 나를 사랑하면 안 될까” (디핵, ‘오하요 마이 나잇’ 중)

2020년 6월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신곡 하나가 등장했다. “사랑의 최약자가 쏟아내는” 솔직한 가사, 감미로운 멜로디에 실린 귀에 착 감기는 래핑. 디핵(D-Hack)의 ‘오하요 마이 나이트(OHAYO MY NIGHT)’다. 유튜브에 올라온 뮤직비디오엔 난데없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일단 음악 포기하지 말아봐. 곧 뜨니까!” 이 댓글에 500개의 댓글이 또 달렸다. “이 얘기만 3년째”라며 농담 섞인 반응도 나왔다. “뭘 좀 아시네.” 디핵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의 공감의 장도 마련됐다. 그러다 이 글은 예언이 됐다. 포기하지 않으니 떴다.

노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는 무려 1년 3개월이 걸렸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에서 2021년 9월 3위까지 올라가더니 185일 연속 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차트 조작’ 없이 일군 ‘기적의 역주행’이었다. 그러다 기어이 음악방송 1위 후보까지 올랐다. 지금도 멜론에선 매일 14만 명 이상(2022년 1월 10일 기준)이 이 노래를 듣고 있다. 최근 서울 삼성동 틱톡에서 만난 디핵은 “내 인생 최대 미스터리”라며 웃었다.

“저처럼 혼자 음악하는 입장에선 관심도 두지 못했던 영역이에요. 인디 뮤지션이 차트와 순위권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역주행의 일등공신은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최강자 ‘틱톡’이었다. 틱톡의 인기 크리에이터가 이 노래를 커버하자, ‘오하요 마이 나이트’는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노래는 듣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들었다. 누군가를 붙잡는 애틋하고 찌질한 가사를, 또 다른 누군가는 ‘만남 300일’을 기념하는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썼다.

“많은 분들의 슬픔에 일조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커플은 가장 행복한 날의 음악으로 쓰기도 하더라고요. 꽤 잘 어울렸어요.” 여름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하면서도 밝은 멜로디가 해석의 다양성을 가져다줬다. 이미 1년 6개월 전의 노래지만,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는 중인 요즘 힙합 트렌드와도 부합한다.

래퍼 디핵 [디핵 제공]

디핵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부분은 감성적인 가사다. “노래를 만들 땐 픽션도 섞지만, 대체로 제 모든 시간을 기록하는 일기나 사진첩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진을 한 장씩 꺼내보며 ‘그 땐 그랬지’, 이렇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을 하면서 절벽 끝에 선 약자”의 입장을 담은 ‘오하요 마이 나이트’를 비롯해 그의 이야기와 상상은 고스란히 노래가 된다. 때론 아이처럼 솔직하고, 때론 함의가 많아 시적이다. 자기 자랑의 플렉스, 당당함을 강조하는 힙합 가사와도 상반된다.

디핵이 랩 가사를 처음 쓴 것은 중학생 시절이었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열다섯 소년이 그 시기를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친구와 음악이었다. “중학교 때 진수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랑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괴롭히지 않더라고요. 제겐 그 친구가 방패였나봐요.” 친구가 좋아하는 힙합 음악을 “무리해서 들으며 함께 하려고 했던”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자양분이 됐다.

“내 이어폰 속에서 나오는 이런 분들처럼 된다면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500원 짜리 노트와 샤프 하나로 저의 전설은 시작됐어요. (웃음)”

본격적으로 이름을 드러낸 것은 2015년 믹스테이프(비정규 무료음반), 2016년 미니음반을 내면서다. ‘쇼미더머니’ 시즌 4, 시즌8에 출연하며 얼굴도 알렸다. 고3 때 힙합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찾아간 동네 교회에서 스승으로 만난 매드클라운은 음악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너의 이야기를 쓰라”고 알려준 음악 스승이다. 디핵의 음악은 특정 세대가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를 만큼 쉬운 힙합을 기반으로 한다. 듣기 편한 싱잉랩, 록 성향의 감성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의 ‘음악적 우주’를 형성한 1980~90년대 한국, 일본 대중음악이 지금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너무나 신기한 건, 김광석 서태지 엑스재팬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좋다는 거였어요. 그 이유가 뭘지 늘 고민했어요. 신생 장르인 랩 힙합이 부모님 세대와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진실한 감정선은 유통기한이 없고, 정말 좋은 음악은 전성기가 없어요. 온도의 차이일뿐, 꾸준히 타오르고 있어요.”

J팝을 듣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쌓인 문화적 다양성은 디핵의 음악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디핵의 노랫말엔 일본어가 영어를 대체한다. ‘다이죠부다요’(괜찮아), ‘사요나라’(안녕) ‘마다코코니아루’(아직 여기에 있어) 등의 짧은 일본어가 등장해 디핵 음악의 독특한 분위기와 감성을 만든다. 엑스 재팬 기타리스트 고(故) 히데가 삶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뮤지션으로의 마인드와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과의 관계, 팬을 생각하는 마음을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의 음악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스스로는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트렌드를 따른 적은 없지만, Z세대의 선택을 받으며 ‘역주행 열풍’을 일으킨 디핵은 주류 시장의 ‘핵’으로 떠올랐다. 자전적 이야기를 녹인 디핵의 힙합은 많은 세대에게 치유의 음악이 되고 있다. “온 세대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여러 세대와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한 결과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저를 왜 좋아해주실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누군가에겐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다는 위안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게 고민이나 아픔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고민이 있으면서도 털어놓을 데가 없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내가 먼저 털어놓을 테니, 우리 그냥 살아만 있자, 용기내서 만수무강하자’.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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