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구역 4배에 GP까지 없애 '구멍'.. 과학화 경계 돈 쏟고도 잇단 오판

정충신 기자 2022. 1. 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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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탈북자 김모 씨가 22사단이 경계를 맡고 있는 지역에서 일반전초(GOP) 이중철책을 뛰어넘어 월북했다. 사진은 비무장지대(DMZ) 내 ‘보존 감시초소(GP)’로 남아있는 곳. 김 씨는 보존 GP 인근 열영상감시장비(TOD)에 포착됐지만 이곳에 상주병력이 없어 제지를 받지 않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했다. 연합뉴스
22사단 장병들이 비무장지대(DMZ) 내 ‘보존 감시초소(GP)’ 앞 철문을 점검하고 있다. ‘보존 GP’란 남북한이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후 각각 DMZ 내 GP 11개를 철거한 뒤 각각 1개씩 빈 건물만 남겨둔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 Why - 22사단 경계 실패 반복, 왜

내륙·해안 동시 경계하는 유일한 사단, 산불·태풍·강설 등 재해도 많아

‘GOP 부대까지 차로 1시간’ 전투근무지원 쉽지 않아

DMZ 병력 철수후 보존 GP 탈북자·월북자 은신처로 활용

전문가 “과학장비 의존 보다 근본적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2022년 새해를 맞이한 지난 1일 탈북자 한 명이 22사단이 경계를 맡고 있는 지역에서 3m 높이의 일반전초(GOP) 이중철책을 뛰어넘어 북한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월북자는 2020년 11월에 22사단 경계 구역인 인근에서 ‘월책 귀순’을 한 체조 경력을 가진 김모 씨였다. 김 씨는 군사분계선(MDL)을 넘기까지 GOP 감시카메라(CCTV) 5번, 열영상감시장비(TOD) 3번, 경고등·경보음 포함해 모두 11차례 포착됐지만 군은 검거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지휘통제실은 GOP 경보작동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이를 보고받지 못한 대대장은 비무장지대(DMZ) 내 TOD에 포착된 김 씨의 월북 움직임을 귀순으로 착각하는 오판까지 내렸다. 22사단은 지난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의 ‘노크 귀순’에 이어 2020년 11월 김 씨의 ‘월책 귀순’, 지난해 2월 북한 주민의 ‘오리발 귀순’ 등이 잇달아 벌어져 경계 실패 비판과 함께 책임자들이 줄줄이 물러나면서 ‘별들의 무덤’으로 불려왔다. 군 전문가들은 정부의 감시장비 강화에도 유독 최근 22사단에서 경계 실패가 발생하는 것은 지나치게 넓은 감시 구역, 과학 장비에 대한 맹신, 정부 대북 정책 오판 등의 합작품 탓이라고 지적했다.

◇동일 병력에 경계구역 최대 4배, 최악의 근무 환경 = 22사단에서 잇달아 경계실패가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최전방의 넓은 경계 구역에 필요한 병력보강 등 부대 개선이 수십 년간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2사단은 내륙과 해안을 동시에 경계하는 유일한 사단으로, 경계 책임구역은 내륙 28㎞, 해안 69㎞로 총 97㎞에 달한다. 보통 한 사단이 책임지는 구역인 25∼40㎞와 비교하면 경계구역이 2∼4배 길다. 이에 반해 병력은 3개 여단과 1개 포병여단으로 다른 사단처럼 1만∼1만5000명에 불과한데도 넓은 지역을 책임지다 보니 부담이 가중됐다. 그마저도 포병여단 예하 2개 대대는 동원사단 수준의 기간편성부대로 전환됐고, 1개 보병여단 역시 1개 대대를 기간편성부대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지속적인 경계실패에도 불구, 병력규모는 타 사단에 비해 줄어들어 ‘위협에 따른 균형 있는 경계병력 배치’에 실패한 셈이다. 또 사단 책임지역은 해발 0∼1300m로 극심한 고저 차에다, 상급·하급부대 간 지리적으로 과도한 이격으로 원활한 전투근무지원도 쉽지 않다. 사단 직할부대로부터 차량 이동 시 GOP 부대까지 최소 1시간 이상 걸린다. 산불·태풍·강설 등 사계절 주기적인 자연재해로 작전활동 외 부가적인 업무에 피로감은 누적된다.

◇침투여건 최적지인데, 정부 대북 유화정책에 감시초소(GP) 철거 후 관광지화 = 22사단에서 근무한 한 예비역 장성은 “해안 축선은 출발지부터 남방한계선까지 완만한 평지로서 비교적 이동이 용이하고, 북한 지역 경계밀도도 상대적으로 낮으며 침투 후 주거지 밀도도 낮아져 노출될 우려가 적다”며 “해무와 안개, 폭우 등 악천후가 빈번한 지역이어서 적 침투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이북의 통일전망대, DMZ 평화의 길 등 관광지가 산재해 장병들의 경계임무가 유독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평화의 상징적 의미로 DMZ GP 병력철수와 함께 ‘평화의 길’이 조성되면서 경계근무자 입장에서는 신경이 더 예민해지는 환경이 조성됐다. 병력철수 후 DMZ에 생겨난 ‘보존 GP’가 탈북자 및 월북자의 은신처로 활용되면서 유사시 ‘남침루트’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워크 대표는 “GP 철거 및 병력 철수로 유사시 남침로가 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전시에 북한군 민경부대는 국군 GP를 제거해 기계화부대의 기동로를 확보하려고 할 텐데, 군 통수권자 지시에 따라 국군이 스스로 최전방 방어 거점을 허무는 일이 벌어졌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22사단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국방개혁에 대한 초안을 작성한 한 예비역 장성은 “상비병력 감축을 통한 국방개혁의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더라도 22사단의 지정학적 취약성과 각종 사건·사고로 누적된 문제점을 고려해 경계 병력 증가안을 편성했지만 이후 국방개혁이 수정돼 이 지역이 갖는 취약성이 배제되고 오히려 타 부대에 비해 병력 수준이 줄어들었다”며 “정치적으로도 평화무드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변모돼 경계요원들의 심리적 이완을 가져와 각종 사건·사고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성급한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 등 맹신 = 2012년 10월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 이후 군 당국은 대북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전방 GOP와 국가중요시설, 미사일 기지 등에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GOP 철책 249㎞ 구간에는 1700억 원을 들여 경계용 CCTV와 광망을 설치했다. 이후 군은 완벽한 경계작전 임무수행을 자신했지만 오리발 귀순과 월책 귀순·월북 등이 보여주듯 곳곳에서 맹점이 드러났다.

이에 정부는 노후화된 구형 중거리감시카메라 20대를 올해 교체하기로 하는 등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 보강에 나선 상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지능형 과학화 경계시스템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이 추진된다. 음원 활용 및 레이더 연동 AI 경계체계를 위해 올해 2월까지 관련 시설 5개소를 설치하고 6월까지 시범운용할 계획이다.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 성능개량 사업에 2023∼2026년 4200억 원을 투입해 경계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아무리 좋은 장비를 도입해도 결국 이를 운영하는 근무자의 기강과 인원보강 등 경계근무 방식의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2사단에서 근무한 한 예비역 장교는 “병 전술 숙련도 유지와 강력한 경계시스템 보강, 실전 능력이 입증된 과학화 장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예비역 육군 장성은 “의존적·실내 근무로 발생한 경계요원들의 근무 질 저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며 “민감한 감시장비의 반복되는 오작동·과작동 등으로 잦은 경보나 이상 징후 대처 시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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