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간 쏟아낸 '78세 깐부'의 열정..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김인구 기자 2022. 1. 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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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의 연극 ‘라스트 세션’은 배우 오영수가 미국 골든글로브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열리는 첫 무대였다. 프로이트 역을 맡은 오영수는 특유의 리드미컬한 대사로 무신론적 세계관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파크컴퍼니 제공

■ 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이트 役 오영수 밀착 리뷰

코로나·추위에도 매진 행진

골든글로브 수상 다음날도 무대

귀에 꽂히는 리드미컬한 대사

쓰러질 듯 물러서지 않는 연기

루이스役 이상윤과 호흡도 일품

10일 미국 골든글로브 수상자 발표 후 겨우 연결된 배우 오영수와의 전화 통화에서 원하는 만큼의 시원스러운 수상 소감을 얻어내지 못했을 때는 솔직히 좀 서운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오영수의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보면서 그가 왜 그토록 “지금은 연극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11일 오후 7시 15분 서울 종로구 대학로티오엠 1관. 영하 10도 이하로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대학로 거리는 한산했지만 오영수와 이상윤의 2인극이 열리는 티오엠 1관은 입장을 기다리는 300여 명의 관객으로 북적였다. 지난 주말 개막해 3월 6일까지 열리는 이번 공연의 1월 중 티켓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진됐다. 이날도 빈자리 하나 없었다.

‘라스트 세션’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어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영국이 독일과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자이자 무신론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20세기 유신론을 대표하는 작가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실제로는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을 펼쳐낸다. 약 90분간 인터미션이나 특별한 등퇴장 없이 두 배우의 설전(舌戰)만으로 이뤄지는 터라 배우나 관객에게 모두 만만치 않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프로이트를 연기했다. 말년에 구강암에 걸려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 사망하기 3주 전쯤의 모습이다. 라디오에서 영국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대국민 담화가 흘러나오는 사이,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은 루이스가 방문한다. 루이스는 자신의 소설에서 프로이트를 조롱했던 적이 있어 긴장한 표정이다. 프로이트가 자신을 비난하기 위해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소설 같은 건 관심도 없다. 그저 한때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지지했던 루이스가 왜 갑자기 유신론자로 변했는지가 궁금하다. 신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다.

도입부만 봐도 이 작품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느낌이 팍 든다. 무의식, 자아와 초자아, 콤플렉스, 카타르시스 등 우리가 요즘 흔히 쓰는 심리학 용어를 제시한 학자로 프로이트를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의 저서 ‘히스테리 연구’나 ‘꿈의 해석’을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 루이스 하면 영화화된 ‘나니아 연대기’를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그가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회심하고 심지어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변증론을 펴낸 학자라는 배경 지식을 갖고 있을까.

90분을 조금의 빈틈도 없이 메우는 대사량도 어마어마하지만 이들이 쓰는 단어나 예로 드는 인물과 저서가 낯설기 짝이 없다. 도덕률, 강박증적 노이로제, 방어기제, 회의주의적 농담, 톨킨과 웰든, 그리고 G K 체스터튼의 ‘영원한 사람’ 등… 입말에 익숙하지 않음은 둘째치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암기했는지 놀라게 된다.

‘오징어게임’을 통해 본 오영수의 연기는 다소 어설퍼 보였다. 세계적인 연기상을 받은 베테랑 배우의 연기에 토를 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적어도 오일남의 캐릭터는 불안해 보였다. 아마도 그가 가진 반전과 연관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오영수의 프로이트는 동요 속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느껴졌다. 외유내강이랄까. 젊은 루이스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유신론 주장에 아웃복서처럼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펀치를 응수했다. 오영수 특유의 리드미컬한 대사 톤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대사를 ‘치는’ 타이밍의 강약이 적절해서 귀에 잘 꽂혔다. 이상윤의 루이스보다는 오영수의 프로이트가 관객의 웃음을 더 많이 터뜨렸다. 꺼질 듯 쓰러질 듯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에너지가 마치 어두운 방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촛불 같았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스타로 주목받는 이상윤의 연기도 2인극의 현란한 ‘티키타카’에 크게 한몫했다. 이상윤은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는 몇 안 되는 배우 중의 한 명이다. 초반엔 엄청난 대사량에 버거운 듯 보였으나 10여 분이 지나자 이내 몸이 풀린 듯 20세기 대표적 기독교 변증론자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관객의 절반은 루이스의 유신론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숨죽이고 이들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암전 이후 두 주인공이 무대에 등장하자 모두 일어서서 찬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오영수는 말 대신 환한 표정과 정중한 인사로 박수에 호응했다. 그리고 파트너 이상윤과 굳게 악수했다. 관객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가족에게 추천하고 싶다”며 극장을 빠져나갔다.

‘라스트 세션’은 2020년 파크컴퍼니에서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 후 이번이 두 번째 시즌이다. 오영수와 신구가 프로이트, 이상윤과 전박찬이 루이스 역을 번갈아 하고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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