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탐정 조즈카 [장르물 전성시대]

2022. 1. 1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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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와 추리소설가의 색다른 공조
[주간경향]

셜록 홈스는 사람을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직업과 성격은 물론 최근에 다녀온 곳이나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정확히 꿰뚫곤 한다. 처음 본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홈스의 장기는 일견 마법처럼 보일 법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속임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보지만 그는 ‘관찰’한다. 이러한 초인적인 추리력은 명탐정 캐릭터가 상징하는 그대로 추리소설의 큰 재미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만약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초능력자가 등장한다면 이는 논리와 이성으로 쌓아 올려야 할 미스터리의 핵심을 뒤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죽은 자의 마지막을 본다거나 아예 피살자의 혼을 불러오는 영매라면 처음부터 게임이 성립되지 않으니 이는 반칙을 넘어 기만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영매탐정 조즈카>의 표지 / 비채


좀비를 등장시킨 〈시인장의 살인〉이 크게 히트한 이후 일본 미스터리계에선 갖가지 초현실적인 설정을 동원한 이른바 ‘특수설정 미스터리’가 활황을 누리고 있다. 〈영매탐정 조즈카〉도 그중 하나로, 영능력자를 내세우는 파격이 우선 눈길을 끈다. 그동안 미스터리 장르에서 영매는 실제로 영혼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속임수를 사용하는 이로 반드시 주인공에 의해 비밀이 파훼되는 존재로 대부분 등장했다. 일드 〈트릭〉은 매화 초능력자들의 사기 행각을 파헤치는 이야기였고, 미드 〈멘탈리스트〉는 가짜 영매 출신 수사 자문을 내세워 모든 것을 이성으로 정련했다. 특히 어떤 불가해한 살인사건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환상적인 분위기의 본격 미스터리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성을 뒤흔드는 기능적인 캐릭터로 분하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의 특별한 기운을 감지하고 죽은 자와 교감하는 영매 조즈카의 능력은 기존의 미스터리 문법을 교묘하게 역이용하며 전에 없던 색다른 재미를 준다.

물론 영매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조즈카는 피해자가 살해당한 장소에서만 기운을 느낄 수 있고, 또 영혼과의 공명 여부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조즈카가 추리소설가 고게쓰와 짝을 이뤄 여러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해답을 미리 얻은 채 이를 논리적으로 해설할 방법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가령 살인자 특유의 ‘냄새’로 범인을 진작에 특정했지만, 눈에 보이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식이다. 그 물증 역시도 상당 부분 불가해한 현상에 의존함으로써 굉장히 이질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그러면서도 범인을 미리 공개하는 도서(倒敍) 추리나, 고립된 서양식 별장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클로즈드 서클, 연쇄살인 등 미스터리의 클리셰를 너르게 비틀어 새롭게 배열한다.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아름다운 여인 조즈카와 고게쓰가 서로에게 느끼는 묘한 애정 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상 물정 어둡고 친구 하나 없는 조즈카가 스스로를 저주받은 피로 여기다 수사에 기여하며 세상과 만나는 과정 역시 그래서 더 힘을 얻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재미는 이 모든 것의 근간을 뒤엎는 반전에 있다. 해답에 접근하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영적 능력으로 도출한 추리에 다시금 완벽한 관찰력을 덧대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미스터리 장르 그 자체에 대한 헌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청춘소설과 사이코스릴러의 기묘한 접점으로 보였던 작품의 본질까지 재차 뒤흔드는 변칙이 꽤나 새롭고도 절묘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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