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퍼니처의 거장, 최병훈 작가

서울문화사 2022. 1. 1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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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인을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아트 퍼니처의 거장 최병훈 작가. 그의 작품들은 요란스러운 세상에서 잠시 조용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기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자인적 의미를 모색한 국제적인 디자이너 최병훈. 사진 속 작품은 현무암을 깎고 다듬어서 만든 아트 벤치 ‘afterimage of beginning’ 시리즈.


돌과 나무를 주재료로 작업하는 최병훈 작가는, 각기 다른 재질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물성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파주 작업실에서 만난 최병훈 작가. 1층은 돌과 나무를 깎고 조각하는 작업실이고 2층은 집무실 겸 드로잉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의 아트 퍼니처 작품을 경험해보는 마크 테토.

어지럽고 요란한 세상이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금세 어디론가 휩쓸려갈 것 같은 요즘, 아트 퍼니처의 거장 최병훈 작가는 침묵을 이야기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생성된 바위를 깎고 갈아서 만든 벤치, 화산석을 품고 있는 수납장,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단아하게 올려진 나무 의자를 보고 있으면 고요함 속에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일찌감치 아트 퍼니처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가구와 예술, 철학을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펼쳐온 작가. 얼마 전 개관한 미국 휴스턴미술관 신관에 세계적인 작가들과 함께 조각을 선보이고, 서울공예박물관 로비의 가구 디자인으로 공예의 부흥기를 이끄는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작가는 개인전〈침묵의 메시지〉를 통해 바쁜 현대사회에서 여백의 미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한국의 미, 자연의 미, 절제의 미를 갖춘 작가의 작품을 예전부터 흠모해왔다는 마크 테토와 함께 최병훈 작가의 파주 작업실과 전시실을 찾았다.

2층 집무실은 작가의 아트 퍼니처 작품들이 멋스럽게 진열되어 있고, 실제로 사용도 한다.


작가의 작품을 촬영한 사진 작품과 오브제들이 어우러진 공간.


작업실 마당에는 작가가 평소에 모은 수석들을 모아두었는데, 자연스럽게 돌이 놓인 광경도 아름답다.

자연에서 얻은
아름다움에는 깊이가 있다.

M 작가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번 가나아트갤러리에서의 개인전도 정말 좋았습니다.

어서 와요. 외국인인 마크 씨가 제 작품을 좋아해주었다니 저도 신기하고 기쁘네요!

M 전시를 보고 작가님께 궁금한 점이 더 많아졌어요. 우선 예술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진학했어요. 그때가 1970년대였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고 디자인이 각광받았죠. 대학 1, 2학년 때 미술의 기초적인 수업을 듣고, 3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응용미술학으로 정했어요. 그리고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것이고요.

M 가구에 집중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원래부터 나무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나무 작업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시대 가구를 만나게 돼요. 조선시대의 가구는 절제의 미감이 빼어난데, 그 가구들이 좋아서 가구에 입문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대량생산하는 가구보다 나만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고요. 그런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 대학교 4학년 때 국전에 입선하고, 그 일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가구를 만들었어요. 그 후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M 작품은 ‘아트 퍼니처’라는 개념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영국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가 산업혁명 이후 크래프트 정신이 기계에 밀리니까 그걸 되살리기 위해 아트 & 크래프트 운동을 했듯이, 나의 작업이 어떻게 하면 더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건지 고민했어요. 가구 디자인과 예술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1990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아트 퍼니처’라는 과목을 개설했어요. 1993년 첫 개인전의 이름도〈아트 퍼니처〉 였어요.

M 아트 퍼니처 작업의 매력은 무엇이에요?

가구는 작가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입체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해요. 작가 스스로 디자인과 쓸모를 고민해서 만들고, 그 물건이 일상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일상에서 사용하는 흔한 물건인데 예술적인 감성을 전달한다면 일상이 좀 더 특별해지니까요.

M 일상의 물건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멋지네요.

우리가 집에서 두고 쓰는 가구들은 대부분 쓰이는 시간보다 공간 속에서 오브제처럼 놓여 있는 시간이 길 거예요. 의자나 소파, 장식장 등 많은 가구들이 그렇죠. 사용되지 않는 시간에도 미감을 발산한다면 훨씬 더 가치 있는 물건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도 이제는 남과 똑같은 걸 갖고 싶어 하지 않고요.

마크 테토에게 나무를 조각하고 사포로 밀어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최병훈 작가.


작품 도면과 서적들이 쌓인 작업실.


조각할 때 사용하는 나무 본들이 걸려 있는 작업실 벽면.


미니어처로 제작한 최병훈 작가의 작품들.

M 작가님의 작품은 어떤 예술적 특징이 있을까요?

제 작품에는 이렇다 할 기교가 없어요. 나무나 돌을 둥글게 깎거나 자연물을 차용하는 거죠. 표현을 절제한다고 해야 할까? 자연에서 얻은 소재를 사용해 최대한 기교 없이 절제된 아름다움을 구현하려고 해요. 자연의 아름다움, 절제의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도록요. 해외에서 전시를 하면 관람객들이 제 작품을 보고 동양화 같다고 하더라고요. 가구에서 여백이 느껴진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게 바로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M 정체성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으셨어요?

국내외 여행을 자주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했습니다. 역사를 학습하고 저의 배경에 대해 공부하고요. 그런 노력들이 제 정체성을 다지는 기본이 되었어요. 1996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프랑스의 화려한 가구 문화를 알고 있으니 긴장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그 필드에서 내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들처럼 똑같이 가서는 안 되고,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들에게 없는 나의 어떤 정서가 나의 정체성이고, 그게 곧 경쟁력이라고 믿었어요.

M 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이에요?

나만의 세계와 시대정신을 담은 아름다움과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에요.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가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백자가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는 유산이죠.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똑같은데 나라와 왕권이 바뀌니까 철학도 바뀌게 되는 거예요. 지금을 살아가는 예술가들도 예전 게 좋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답습하지 말고 지금 이 시대의 정신을 담아야 제대로 된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에서는 명확한 정체성과 시대정신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예요.

M 저는 외국인으로서 선생님의 작품에서 자연의 미와 절제의 미, 그 2가지가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자연에서 얻어지는 아름다움에는 깊이가 있어요.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해지는 느낌을 줘요. 사색을 하게 되고, 사유를 하고, 그 과정에서 평온을 얻게 되죠. 아무리 세상이 요란스럽더라도 내 앞에 조용하고 깊이 있는 아름다운 물건이 나에게 위안을 주는 거예요. 절제는 겸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스스로를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거죠.

M 주로 나무와 돌을 많이 사용하시는데 그 이유도 궁금해요.

자연의 재료를 좋아해요. 처음에는 나무로 시작했고 돌을 사용하게 되면서 소재의 특성을 제 작품에 차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돌은 무겁기 때문에 주로 작품 하단에 놓고 작품의 전체적인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로 많이 사용하는데, 돌을 사용했을 때는 기능적인 부분뿐 아니라 그 돌이 수억 년에 걸쳐 생성되면서 만들어진 특성을 빌려온다고 생각해요. 작품은 엄청난 세월을 함께 품게 되고, 시공을 넘나드는 미감을 얻게 됩니다.

M 소재를 활용하는 작가님만의 방식이 있다면요?

불교에 중도(中道)라는 사상이 있는데, 어떤 것의 중간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극과 극, 그 2가지 모순된 가치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제 작업이 중도의 미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융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여러 물성과 소재를 만나게 해서 중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M 이번 인터뷰 덕분에 아트 퍼니처는 물론 한국적인 자연의 미, 절제의 미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멀리까지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마크 씨에게 제 작품이 바쁜 일상 속에서 숨 돌릴 틈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네요!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사진 속 작품들은 ‘빈상의 공간’을 주제로 선보인 ‘afterimage of beginning’ 시리즈.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벤치에 앉은 최병훈 작가와 마크 테토. 이 작품 역시 커다란 현무암을 직접 깎고 다듬어서 형태를 만들었다.

아트 퍼니처는 디자인 감성, 공예의 손기술, 아티스트의 창의성, 이 3가지가 융합해야 완성되는 영역이에요. 아름다운 디자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정화시켜주기도 합니다.

현무암 위에 나무 수납장을 올린 ‘afterimage of beginning’ 시리즈.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벤치에 앉은 최병훈 작가와 마크 테토. 이 작품 역시 커다란 현무암을 직접 깎고 다듬어서 형태를 만들었다.


튼튼한 돌이 나무 가구를 받치고 있어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안정감 있는 미감을 표현한다.

마크 테토(Mark Tetto)

JTBC〈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2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에디터 : 심효진  |   포토그래퍼 : 김덕창  |   취재협조 : 가나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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