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칼럼]'노동' 없는 대선
이번 대선 노동개혁 새쟁점 없고
후보들 정책 차별화 보기 힘들어
재계도 공동의 대응 모습 안보여
차기정부 정책 중도로 수렴할듯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노동 이슈가 주요 쟁점으로 뜨지 않는 데 불만이 많은 듯하다. 그가 의욕적으로 제시했던 주 4일제와 모든 취업자를 보호 대상으로 하는 신노동법도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정책이 진영을 가르는 뜨거운 쟁점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 노동 공약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이유는 정책 환경과 인물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환경 요인을 보면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노동정책에 대한 피로도가 매우 높아졌고 긴박하게 해결해야 할 밀린 숙제도 없다는 점이 5년 전과 다르다. 그동안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주 52시간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중대재해처벌법과 공공 부문 노동이사까지 큰 이슈들이 숨 가쁘게 돌아가며 모두를 지치게 했다. 그 여파인지는 몰라도 이번 대선에서 새로 떠오르는 첨예한 쟁점도 없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하고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정책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사직(大辭職) 사태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해 11월 거리 두기가 완화되자마자 일부 직종에서 나타났던 구인난과 임금 인상 러시는 예상 밖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직 큰 정책이 못 나온다고 하겠다.
인물 요인도 있다. 각 당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토론이 있었지만 뜨겁게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거의 쟁점이 되지 않았고, 노동 개혁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소년공 출신이라는 노동자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이재명 후보는 오히려 시장 친화적이고 성장 촉진적인 정책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자리와 기회의 총량을 늘리는 방법은 성장률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문 정부의 친노동 기조와 궤도를 달리할 가능성을 보인다. 윤석열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노동정책으로 각을 세우고 차별화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윤 후보는 최근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공기관의 노동이사뿐 아니라 공무원 노동조합을 위한 타임오프제를 약속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선거에서 표를 갖고 있는 노동계를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속내를 털어놓기까지 했다. 보수 후보들도 노동 유연성을 높이되 노사 타협이 가능한 임금과 근로시간의 유연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남은 변수는 노동계와의 관계 설정이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 투쟁이 변수가 되진 않겠지만 2월 중순에 지지 후보를 발표하겠다는 한국노총에 각 당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관전 포인트다. 노동계의 수십 가지 요구 중에 4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는 당장의 현안이기도 하다. 이미 국회 심의 중이고 당위론적으로 반대하기 어렵지만 제2의 최저임금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예상컨대 일부만 허용하는 지금의 포지티브 방식을 몇 가지만 빼고 모두 적용 방식으로 절충될 전망이다.
반면 대선에 임하는 재계의 태도는 방어적이다. 요구하는 정책이 새롭지 않고 이슈를 선도하는 것 같지도 않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기업에서 인사 관리의 중점이 20~30대 첨단 기술 인력으로 이동하면서 연공 중심의 인사와 임금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나섰지만 경제 단체들은 변변한 임금 전담 조직 하나 없다. 전방위적인 기술 인력 부족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재계 나름의 고용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통상임금에 대한 법적 분쟁으로 많은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우발 채무를 떠안고 있지만 개별 기업들이 각자도생할 뿐 재계 공동의 집합적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임금에 대한 법적 정의나 근로자대표제도, 일반 해고의 정당성 등에 대한 모호한 규정으로 인한 사법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도 시급한 과제다. 따라서 재계도 합리적인 정책 요구를 간추려 여론에 호소하고 대선 후보들을 설득하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지금 대선의 흐름으로 보면 다음 정부의 노동정책은 균형적인 중도 수렴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노동 개혁 과제가 제시되더라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점진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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