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호미 들고 밭을 갈 때다

한겨레 2022. 1. 1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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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과 '달파멸콩' 이슈가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10일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는 '한국 정치인들, 소셜미디어에서 '멸공' 게시물 인증 바이럴'이라는 기사에서 "멸공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편이었던 남한에서의 지배적인 공적 담론이자 구호"라고 소개하며, 이 고색창연한 '멸공'이 뜬금없이 회귀한 과정을 언급했다.

문재인 정권을 부수자는 의미로 읽히는 '달파'와 멸공이 연상되는 '멸콩'은 일베에서 흔히 일어나는 인증 놀이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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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최선영의 미디어전망대]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멸공’과 ‘달파멸콩’ 이슈가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10일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한국 정치인들, 소셜미디어에서 ‘멸공' 게시물 인증 바이럴’이라는 기사에서 “멸공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편이었던 남한에서의 지배적인 공적 담론이자 구호”라고 소개하며, 이 고색창연한 ‘멸공’이 뜬금없이 회귀한 과정을 언급했다. 소셜미디어 ‘멸공’ 인증 놀이를 해온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 쪽으로부터 “폭력 및 선동에 관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게시물을 삭제당했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며 시종일관 ‘노빠꾸’로 대응해왔다. 문제는 지난 주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달걀, 파, 멸치, 콩 구입 인증을 하며 정 부회장 지지를 하는 듯한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연출한 것. 문재인 정권을 부수자는 의미로 읽히는 ‘달파’와 멸공이 연상되는 ‘멸콩’은 일베에서 흔히 일어나는 인증 놀이와 유사하다. ‘멸공 챌린지’가 의도였을까. 선거가 60여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가롭게 “달파멸콩” 인증 놀이를 하는 후보자의 북한과 중국에 대한 인식이 궁금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신세계그룹 제공

‘멸공’ 이슈를 점화시킨 책임의 8할은 언론에 있다. 지난해부터 언론은 정 부회장 인스타그램을 기사화해 쏠쏠하게 클릭 장사를 해왔다. 대기업 부회장의 일상을 보는 재미에 시원한 정치적 발언까지, 섭외할 필요도 취재 나갈 일도 없으니 기사 작성도 쉽다. 조회 수로 돈도 버니 고마운 ‘멸공’일 수밖에.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역시나 포기하지 않고 “멸공은 현실”이라는 글을 올리자마자, ‘정 부회장, 멸공 절필 선언’이라는 기사가 포털에 올라온다. ‘절필 선언’과 ‘단독보도’라니 웃프다. 신핵관인 신세계 관계자를 인용한 이 기사는 결국 하룻밤 새 급속도로 공유되며 ‘댓글 맛집’ 기사가 되었다.

점입가경은 야당 후보 선거캠페인 메시지 형식이 ‘멸공’ 해프닝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7언 절구 시 짓듯 “성범죄 처벌강화” “무고죄 처벌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봉급 월 200만원” 등 한줄 공약이 소셜미디어에 툭툭 올라온다. 후보도 당 정책본부장도 이 문구 맥락을 설명하지 못하니, 공약이 아니라 즉흥적인 관심 끌기와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유쾌한 정치 참여라는 측면에서 정치의 놀이화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는 “놀이에서 ‘거짓말’로 규칙 위반을 하면 탈락이다. 놀이의 파괴자는 겉으로는 놀이의 규칙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타인의 정직을 악용한다”고 설명한다. 지키지 못할 선거 공약은 놀이 규칙 위반이 될 수 있다.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최근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자처하는 2030 유권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호미 들고 밭갈이’ 하는 진지한 놀이의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밭갈이’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주위에 알리고 권유하는 정치 참여 활동을 일컫는다. 이들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공약과 정책을 ‘움짤’(gif)과 이미지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하고, 묵묵히 밭을 갈다가도 지지하던 후보의 나를 알아주지 않는 행보에 때론 호미를 내던지며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그만큼 개인 현안에 민감하고 절박한 유권자가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고통과 아픔을 진심으로 알려고 하고 해결할 리더는 누구일까.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사람은 누구일까. 정치라는 놀이에 참여해 규칙을 지키고 살피며 즐겁게 밭을 갈 때다.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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