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실패가 새겨놓은 교훈..대만, 두번은 당하지 않았다

한겨레 2022. 1.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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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대만기자가 전한 방역성공의 명암
유행 초기 전문가 현지 파견 등
중앙정부 주도의 신속 대응·통제
정기훈련·병상 등 방역체계도 완비
누적 확진자, 한국의 2.6% 불과
체계적 소상공인 지원 등 성공에도
백신 불신·낮은 접종률 위험요소
"확진자 없음 집착하면 일상 못누려
오미크론 확산 대응방식도 변화를"
지난 7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버스 창밖을 보고 있다. 타이페이/AP 연합뉴스

대만은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 방역에 실패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선 체계화된 방역 시스템으로 낮은 확진자·사망자를 유지해 방역 모범국으로 떠올랐다. 한국에 거주하는 대만 프리랜서 기자 양첸하오가 자국 방역 전문가들을 서면으로 취재해, 20년 사이 대만 방역체계 변화와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명암을 짚었다.

중국 현지서 직접 감염병 정보 수집

“2019년 12월 말께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전문가들을 곧장 후베이성 현지에 파견했다.”

천스중(陳時中) 대만 위생복리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한겨레>의 요청으로 이뤄진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유행 초기 신속한 정보 수집으로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천 부장은 타이베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대만 최초의 치과의사 출신 각료로, 2017년 2월 대만 위생복리부장에 취임한 뒤 지금까지 ‘중앙전염병지휘센터’를 총괄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세계보건기구가 심각성을 경고하기 전 일찌감치 전문가들을 중국으로 보냈다. 천 부장은 “우한에서 확산했던 폐렴의 정체를 중국 정부를 통해 확인하려 했으나 완전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때문에 직접 정보를 수집해 방역정책을 수립했다”며 “우한 지역에서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폐렴 환자들이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세계보건기구에 전달했지만 그들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건 2020년 3월이다.

지금까지 대만의 코로나19 방역 성적표는 한국을 압도한다. 9일 기준 대만의 누적 확진자 수는 1만7362명, 사망자는 850명이다. 10일 기준 한국의 누적 확진자 수(66만7390명), 사망자 수(6071명)와 견주면 대만의 확진자는 한국의 2.6%, 사망자는 14%에 불과하다. 대만의 2022년 추정인구는 2388만명으로 한국(5170만명)의 46%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큰 차이다.

대만의 보건의료 관계자들은 2002년 사스 방역실패로, 국가가 직접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대만 감염병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호메이샹(何美鄉) 중앙연구원 생물의학과학연구소 연구원 역시 <한겨레> 요청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사스 당시 바이러스 정보와 대응 방식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직접 공유 받지 못했고, 대만에 상주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관계자를 통해 전달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협업도 중요하다. 당시 타이베이 시장은 국민당 야당 소속이었고, 중앙정부는 민진당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사스 대응을 놓고 여야가 협력하지 못해 방역 골든타임을 놓쳤다. 사스 당시 한국은 3명만 감염됐고, 사망자는 없었다. 반면 대만에서는 346명이 사스에 감염됐고 81명(치명률 23.4%)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코로나19 대응 때는 중앙정부에 강한 통제권을 부여했다.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대만은 코로나 초기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이런 결정은 감염병 유입을 지연시켜 의료자원을 보호할 수 있었다. 천 부장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이 해외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있을 때, 국경에서 검역을 강화하고 입국 제한을 통해 의료역량을 보전할 수 있다”며 “다만, 대만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검역과 국경 통제에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방역 강화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스 이후 꾸준히 진행해 온 방역훈련도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다. 중앙정부는 확진자-접촉자-접촉의심자를 분류해 동선을 추적하고 각각에 대한 방역조치 체계를 만들었다. 대만 북부·중부·남부 세 지역으로 나눠 각각 감염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음압격리병상도 대폭 확충했다. 병원내 감염을 막기 위해 각 병원들은 감염 환자의 이동통로를 구분해 격리병실로 옮기는 이송 훈련을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사스 유행 당시 타이베이시립 호핑병원의 응급실장이었던 장위타이(張裕泰)는 “당시 병원에 1천명이 넘는 직원과 환자들이 코호트 격리됐고, 환자와 의료진이 죽어나가는 처참한 광경을 목도했다. 병원에서 교차 감염으로 7명의 동료 의료진을 잃었다”며 “지금은 감염병 표준대응절차(SOP)가 있고 코로나19 환자들이 호핑병원으로 이송되어도 더 이상 혼란을 겪지 않는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소상공인 경제 지원

소상공인에 대한 적극적인 경제지원도 방역 성공의 열쇠로 꼽힌다. 아무리 강력한 국경 통제도 감염병은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실제 지난해 4월 타오위안(桃園) 국제공항 인근의 항공사 관계자 격리 숙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고, 감염은 지역사회로 확산됐다. 타이베이 도심인 완화(萬華) 구역의 유흥시설에서도 집단감염이 잇따랐다. 유흥업소 종업원과 이주노동자, 노숙자 숙소까지 바이러스가 퍼져 지난해 5월17일께는 하루 확진자가 535명에 이르렀다.

대만 역시 한국과 같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했다. 지난해 5월 확진자가 늘면서 실내 모임인원은 5명으로 제한됐고, 학교의 대면수업과 종교 예배활동도 중단됐다. 유흥업소의 영업은 금지됐으며 식당에선 음식을 먹지 못하고 포장만 할 수 있게 했다. 소상공인 피해 보상에 소극적이었던 한국과 달리, 대만은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지원금을 지급했다. 대만 정부는 6월부터 긴급예산을 편성해 5~7월 중 한 달의 수입이 전년도(2020년)에 견줘 절반 이상 감소하면 ‘직원 1명 당 4만위안(한국돈 170만원)’을 지원했다. 방역조처로 영업을 할 수 없는 사업자에겐 휴업지원 1만위안(43만원), 직원에게 3만위안(130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대만 정부는 적극적인 방역대책으로 지난해 말 다시 하루 확진자를 0명까지 줄일 수 있었다. 이후로도 대만은 소상공인의 큰 반발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한 방역정책을 지속하고 있는데, ‘손실에 대해선 충분히 보상한다’는 신뢰가 바탕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낮은 백신 접종률은 위험요소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관리한 국가로 평가되지만, 코로나19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가장 심각한 위험요소는 낮은 백신 접종률이다. 대만 방역 당국의 통계를 보면 현재 1차 백신 접종률은 79.6%, 2차접종률은 70.2%이다. 특히 75살 인구의 접종완료율은 67%로, 한국 60살 이상 인구의 3차접종률(81.1%)에 미치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감염 위험이 크지 않았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언론과 야권이 백신의 이상반응을 강조하면서 백신 불신도 상당하다. 지난해 백신 대란으로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백신 도입은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한국은 지난해 2월부터 공격적으로 백신 접종에 나섰는데, 대만은 지난해 5월까지 도입된 백신 물량이 60만회에 불과했다. 지난해 5월 대유행 때 1차접종률이 1% 수준이었다. 대만은 확진자가 많지 않음에도 코로나19 누적 치명률이 4.9%(한국은 0.91%) 수준인데, 낮은 백신 접종률이 중증화율을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호 연구원은 “대만의 고위험군 인구가 되레 접종률이 낮아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에서 큰 위험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많지 않아 정부가 진단검사 역량을 강화하지 않은 것도 불안요소로 꼽힌다. 천 부장은 “방역을 잘해왔던 탓에 대량 검사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지난해 5월 대규모 유행 당시엔 무증상 감염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약점을 보였다”며 “유흥업소를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시민들이 역학조사에 잘 협조하지도 않아, 감염자를 추적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확진자 0’에 집착하는 대만의 여론이 되레 일상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있다. 신규 확진자가 발표되는 매일 오후 2시 시민들은 정부의 브리핑을 지켜보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탄식을 내뱉는다. 2020년 4월12일~12월21일 253일 연속 확진자 0명이었던 대만은 지나치게 ‘확진자 없음’에 목을 맨다. 호 연구원은 “확진자 0에만 집착하면 중국과 같이 봉쇄조치를 하고 아예 일상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경증이지만 전파력은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한다면 대만의 대응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만의 코로나19는 2022년 새해 들어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대만의 신규 확진자는 60명(지역감염 11명, 해외유입 49명)이다. 대만 당국은 오는 24일까지 방역단계를 2단계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은 지난해 5월에 이어 2차유행이 일어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첸하오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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