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오르자 알게 됐다.. 예술은 닿지 않아도 손을 뻗는 일임을"

김연수 소설가 2022. 1.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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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하룻밤]
①소설가 김연수가 안도 다다오에게 보내는 편지

혼자만의 미술관을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밤중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오롯이 작품과 공간 속을 거니는 마법 같은 순간.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화제의 전시장에서 홀로 보낸 하룻밤을 에세이 한 편으로 풀어내는 신년 기획을 시작합니다. 첫 손님은 김연수 소설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81)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을 찾았습니다. 새해 첫 주 미술관에서 겨울밤을 지샌 김연수 소설가가 안도 선생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편집자 주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2019년 미술관에 새로 문을 연 ‘명상관’에 들어간 김연수 소설가가 정좌해 천창으로 쏟아지는 새벽의 첫 햇살을 맞고 있다. 고독과 추위, 칠흑의 가장 마지막을 견디자 눈부신 아침이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혼자 미술관에서 밤을 지새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궁금했을 뿐입니다. 아침에 나는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 사람이 달라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만, 내심 그런 기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자정 가까울 무렵, 옷을 잔뜩 껴입은 채 산 위에 있는 미술관으로 올라간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아침에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새해가 밝아온 지도 벌써 열흘 넘게 지난 지금, 새삼 늦은 인사를 보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저는 조금 변했으니까요.

강원도 산속에 있는 ‘뮤지엄 산’을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만,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처음으로 갔을 때는 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였고, 전염병이 아직 만연하기 전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문득 의심이 들더군요. 그 산길의 끝에 미술관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 같았습니다. 웰컴센터를 나와 자작나무 사이를 걸으면서도 계속되던 그 의심은 본관 앞에 이르러서야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물결 위로 건물 측면의 파주석 벽이 은은하게 되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지금보다 젊었습니다. 그런 나날이 조금은 더 지속될 줄 알았는데, 이제 그 물은 얼어 있습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모든 게 멈춰버린 지금, 우리가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벽이면 수온주가 영하 10도를 밑돌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봤습니다. 과연 저는 아침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저는 몇 해 전, 친구들과 함께 본 봄날의 빛을 떠올렸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비로소 차이를 알겠습니다. 높음과 낮음, 뜨거움과 차가움, 밝음과 어두움. 일상과 거리 두기. 아무도 없는 미술관 건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걸으며 저는 그 차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우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문장입니다. 자서전에서 ‘왜 콘크리트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선배 건축가인 가우디가 맞닥뜨렸던 어려움에 대해 말하다가 불쑥 튀어나온 문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란 계속 지고 있는 사람이겠죠. 본관 건물의 가장 낮은 곳인 삼각 코트로 내려가다가 저는 선생님이 펴낸 도쿄대 강의록을 떠올렸습니다. 그 책에 ‘연전연패’라는 제목을 붙인 건, 역으로 계속 지고 있는 사람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지난 6일 자정 무렵, 김연수 소설가가 미술관 정원에 놓인 조각가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연인’ 옆에 섰다. 뒤쪽으로 안도 다다오의 ‘스톤 가든’이 보인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삼각 코트’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예각의 삶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지나온 길은 어떤 식으로든 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그것은 의지의 자취, 방향의 자취입니다. 미술관의 가장 아랫부분까지 내려와 돌무더기 위에 선 뒤에야 저는 제가 지나온 길이 만든 날카로운 기하학의 자취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 모서리들을 보다가 우리의 삶도 저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더 아래에 있는 명상관에 들어가 혼자 있으면서도 내내 그 생각이었습니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명상관은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추위와 어둠 속에서 모든 게 의심스러운 건 당연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러나 가우디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심과 방황이 만들어낼 예각의 삶이, 뒤돌아볼 때 의지와 방향으로 남을 그 자취가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중정처럼 미술관 내외를 잇는 '삼각 코트'에 들어서면, 삼각의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인간이 창조한 예각으로 자연의 푸른빛이 어린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동트기를 기다려 밖으로 나가니 치악산 쪽 하늘 전체가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혼자 밤을 보내고 나니 빛에 민감해졌습니다. 그 빛은 태양으로부터 어둡고 텅빈 우주 공간으로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손을 뻗듯이. 이윽고 해가 떠올라 얼어붙은 내 몸을, 또 본관 파주석 벽면을 노랗게 데우는 것을 보노라니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건축과 예술과 문명 전체가 빛을 향해 에둘러 돌아가는 길, 닿지 않는데도 손을 뻗는 일,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이 건물의 모든 통로와 구석이 완전히 이해됐습니다.

선생님이 설계한 이 건물 전체가 그런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안 순간 저는 변했고,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마음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니까요. 전염병의 시대가 끝난 뒤 뵐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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