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이한열 열사 생가 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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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가 고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 입학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생활했던 지산동 생가 보전에 나선다.
생가는 이 열사의 부친 이병섭 씨가 1999년 세상을 떠나고 장성한 자녀들이 출가한 이후에도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가 홀로 거주했던 곳이다.
배 여사는 이 집에서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곤희 광주 동구 인문도시정책과장은 "이 열사 생가에서 200∼400m 떨어진 곳에 고 문병란 시인과 오지호 화가 생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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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가 고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 입학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생활했던 지산동 생가 보전에 나선다. 생가는 이 열사의 부친 이병섭 씨가 1999년 세상을 떠나고 장성한 자녀들이 출가한 이후에도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가 홀로 거주했던 곳이다.
9일 별세한 배 여사는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했다. 고인은 1998년 민주화운동보상법 및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22일간 농성을 벌여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생가(323m²)는 마당과 1층 주택(62m²)으로 이뤄졌다. 주택 구조는 부엌, 거실, 안방, 이 열사가 머물던 공간을 포함한 방 2개, 화장실 등이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서 살았던 가족들은 1970년 이 열사가 네 살이 되던 해 지산동으로 이사했다. 배 여사는 이 집에서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인은 별세하기 직전까지 지산동 집에서 생활했다.
이곤희 광주 동구 인문도시정책과장은 “이 열사 생가에서 200∼400m 떨어진 곳에 고 문병란 시인과 오지호 화가 생가가 있다”고 말했다.
배 여사의 영결식은 11일 진행됐다.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고인의 유해는 지산동 자택을 들러 망월묘역 8묘역에 안치됐다. 이 묘역은 배 여사의 남편이 안장된 곳으로, 이 열사의 묘소를 마주보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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