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84] 고성 도치알탕
집 나간 빗자루도 돌아온다는 섣달, 동해 북쪽 작은 바다 마을을 찾은 것은 순전히 시원하고 텁텁한 도치알탕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어류 도감에서는 ‘뚝지’라지만, 고성에서는 ‘도치’나 ‘심퉁이’라 부른다. 날씨가 추워지자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작은 알과 뭉글뭉글 부드러운 살이 떠올랐다. 신 김치를 넣고 고춧가루를 더해 칼칼하고 시원하게 끓인 도치알탕이 제철이다.
명태가 사라진 이후 도치는 고성 사람들에게 겨울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다. 몇 년 전 이맘때 눈보라가 휘날리던 날, 낯선 곳에서 꽁꽁 언 마음을 풀어주었던 음식이다. 도루묵을 그물에서 따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하나둘 들어가는 식당을 따라 들어갔다. 그곳이 동해안 최북단 대진항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았지만 포구가 낯설지 않은 것은 그 식당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도치는 생김새가 참 독특하다. 입은 작고 몸은 공처럼 둥글고 꼬리는 짧고 가늘다. 그리고 배에는 빨판이 있어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붙어 지낼 수도 있다. 그물을 놓아 잡지만 간혹 물질을 하는 해녀 눈에 띄어 잡히기도 한다. 빠르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도치가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빨판 외에도 갯바위와 구별되지 않는 보호색과 많은 알 덕분이다. 깊은 바다에서 생활하다 산란기가 되면 연안으로 이동해 알을 6만여 개 낳는다. 산란기에 암컷 도치는 알집이 있어 배가 불룩하고 처져 수컷과 구별할 수 있다.
암컷보다 큰 빨판을 가진 수컷은 알을 지키며 부화하는 것을 보고 죽는다. 아귀, 곰치와 함께 동해 ‘못난이 삼형제’로 꼽히지만 부성애는 못된 인간들을 부끄럽게 한다. 고성에서는 도치알을 두부 모양으로 쪄서 제물로 올리기도 했다. 알탕만 아니라 수컷은 살짝 데쳐서 내놓은 숙회나 두루치기로도 인기다. 집마다 처마 밑이나 어구를 손질하는 작업장 구석에 손질해 걸어 놓은 도치 몇 마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래기를 말리듯 걸어 놓았다가 반찬이 없을 때 언제라도 꺼내 밥상에 올렸다. 한때 어부들 발에 이리저리 차일만큼 천대를 받았던 도치는 있는 듯 없는 듯 고성 바닷가 사람들의 입맛을 챙기는 효녀 물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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