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경제'를 대선에 이용하지 말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2. 1.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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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세계를 선도해 나가는 신산업 분야가 날로 늘어나고”, “문화콘텐츠 산업까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개선”….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대통령 문재인의 신년사다. 대통령을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년사는 긍정과 낙관의 기운이 충만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딴 세상 인식의 자화자찬”이었다고 비판했지만, 이 신년사가 나온 시점의 여론은 사실상 정권 연장을 더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대통령이라는 직업이 그런 건가? 1984년 재선을 노리던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공화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미국은 선진공업국가들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 가장 낮은 인플레율, 가장 높은 고용증가율, 가장 낮은 세공제 후 소득증가율을 기록한 나라다.”

물론 레이건은 재선에 무난히 성공했다. 하지만 2년 후 레이건 행정부의 연방예산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토크먼이 레이건의 ‘경제 조작’을 폭로함으로써 대통령제 국가의 해묵은 쟁점에 불을 붙였다. 지난 수십 년간 중간선거 때마다 미국인의 가처분소득은 대폭 증가했으며, 대통령선거 때마다 실업률이 감소한 경향을 꾸준히 보여온 건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근시안적 유권자에게는 근시안적 정책이 제격”이라는 말이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적 경제조작에 현혹되는 유권자들에 대한 경고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또는 재임을 마친 대통령이 자기 당 소속 후보를 위해 장기적인 경제안정과 발전을 저해하면서 일시적으로 경제사정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상식’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촉구한 말이다. 그러나 그건 각자도생하기에 바쁜 유권자들에겐 과도한 요청이었기에, 선거를 앞둔 경제조작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조작을 해도 정권교체는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 “그래봤자”라는 심리도 한몫을 했을 게다.

선거 때마다 되살아나는 경제조작

문재인 신년사에 수사적 과장은 있을망정 그런 조작의 혐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문제는 좀 다른 데에 있는 것 같다. 경제조작은 우회적이고 정교한 작업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선을 겨냥한 ‘경제’의 정치적 이용이다. 이른바 ‘여당 프리미엄’을 감안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기사 제목으로까지 등장한 “선거 끝나면 또 뒤집나요?”나 “던지면 받는다”는 말이 시사하듯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문재인 정권의 정책을 뒤집는 공약들을 연이어 던지고 있고, 여권은 그것들을 덥석 받아 곧장 당정협의에 들어가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이재명은 ‘만행’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 기능을 떼서 청와대 직속 또는 총리실 직속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압박하기까지 한다.

이재명은 지난해 11월11일 국회에서 연 ‘청년, 가상자산을 말하다’ 간담회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코인 과세는 그간 정부가 반드시 시행하겠다고 공언해오던 것인지라 그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이재명은 그걸 거침없이 관철시킴으로써 2030세대에 큰 점수를 얻었다.

자신감을 얻은 이재명은 논란의 소지가 큰 부동산 영역에까지 뛰어들었다. 그는 12월12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1년간 유예’ 방안을 제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대선 앞에 잇단 부동산 감세로 표를 구하려는 ‘세퓰리즘(세금+포퓰리즘)이 아닌지 묻게 된다”고 했고,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실효성은 없고 혼란만 키운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제안 하루 만에 민주당이 “바로 당정협의”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더욱 탄력을 받은 이재명은 18일 “공시가격 관련 제도 전면 재검토”를 던졌다. “당정은 신속한 협의로 국민부담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잘못된 게 있다면 즉시 바꿔야 한다. 대선이 코앞이라고 해서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이재명의 제안들은 문재인 정권의 정책 기조는 물론 ‘보유세 실효세율 대폭 인상, 부동산 불로소득 원천차단’을 외쳤던 자신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성실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거 끝나면 또 뒤집나요?”라는 의구심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없었다. “나는 문재인 정권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메시지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정책 일관성을 지키려는 청와대의 신념’마저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국민을 더 고통스럽게 해선 안 된다”며 “국민이 요구하고 필요한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실용성과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실용성과 유연성’은 듣기에 좋은 말이지만, 그게 곧장 ‘세퓰리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향신문이 사설을 통해 잘 지적했듯이, “불과 1년 만에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수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책 유연성’이 아니라 ‘신뢰 훼손’이다. 투기 억제와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어렵게 만든 정책을 되돌리는 처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권력은 이미 문재인에서 이재명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였다. 12월20일 문재인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올 3월까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 이후 전기료는 10.6%, 가스료는 16% 인상한다는 발표는 일주일 후에 나오게 되는데, 이건 ‘조삼모사 기법’인가? 왜 모든 게 대선일인 3월9일을 기준으로 삼는 건가?

‘세퓰리즘’의 이재명 띄우기 눈살

모두가 다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12월23일 금융위원회는 올 1월31일부터 연 매출 3억원 이하의 영세가맹점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지금의 0.8%에서 0.5%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전체 가맹점의 75%에 해당하는 220만곳이 혜택을 보게 된다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언제부터 벌어진 일인데 왜 이제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12월28일 당정은 2021년 쌀 초과생산량 27만t 중 20만t을 정부가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재명의 제안을 정부가 이전의 입장을 바꾸면서 수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하명에 정부가 동원된 노골적인 ‘이재명 띄우기’”라고 비판했다.

이재명의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 날이었던 10월26일 당정이 유류세 20% 인하를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걸 정략적인 ‘이재명 띄우기’로 보긴 어려웠지만,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 이젠 ‘이재명 띄우기’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급해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도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이런 포퓰리즘 악순환 경쟁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 3월9일까지 또 어떤 ‘이재명 띄우기’가 나올지 궁금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재난지원금 문제일 게다. 이재명은 1월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소 국민 1인당 총액 100만원 정도는 맞춰야 한다”며 “설 전에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이틀 후 한발 물러서는 듯한 말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라는 건 분명하다.

유권자들이 설날 밥상에서 이재명이 쟁취한 1인당 최소 50만원의 재난지원금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재명과 여권이 꿈꾸는 것은 ‘4·15여 다시 한 번’일 게다. 야당의 승리가 예상되었던 2020년 4·15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비결도 바로 재난지원금이 아니었던가. 원래 정부는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재난지원금을 주려고 했지만 민주당이 강하게 우기며 압박하는 바람에 전 국민 지원으로 돌아섰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고통받고 있긴 하지만, 우선적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손실보상과 빈곤층의 삶에 집중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 재원 충당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표밭에 시선을 돌리지 말고, 절박한 정도를 기준으로 삼아 지원함으로써 더불어 같이 살아보자는 것이다. 대선은 그런 논의의 마당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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