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사이트] '호랑이'가 그들에겐 더 열심히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입력 2022. 1.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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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서 봤다고 거짓말하며
본 적도 없는 호랑이 수없이 그린 화가 앙리 루소
남들은 믿지 않지만, 배에서 호랑이와
사투 벌여 살아 남는 영화 '파이 이야기'
실제든 거짓이든 '호랑이'가 살아갈 용기 줘..
당신의 마음속 '호랑이'는 있나

올해의 호랑이는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 검은 호랑이다. ‘검은 호랑이’는 상상 속 동물이라고 하니 여러 화가가 그린 호랑이 그림 중에서도 이 맥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은 앙리 루소(1844~1910)의 것이 아닐까 싶다. 루소는 본 적 없는 호랑이를 수없이 많이 그렸다. 사람들에게는 군대에서 복무하는 동안 멕시코로 파병 나갔을 때 본 호랑이를 그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프랑스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작가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루소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관세청 말단 공무원이 되었고 홀로된 어머니를 봉양하며 여섯 자녀를 두었지만 대부분을 유아기에 잃었다. 그에게 유일한 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다른 과목은 몰라도 그림과 음악에서만큼은 상을 받았던 터였다. 틈틈이 그린 그림들로 40대 초반 전시회에 참여하며 상도 탔지만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49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연금 약간과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푼돈을 모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린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못한 앙리 루소는 실제로 호랑이를 본 적 없지만 루브르박물관에서 본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표본 삼아 수없이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 소설 ‘파이 이야기’는 망망대해 작은 배에 호랑이와 함께 남겨진 주인공이 호랑이 덕분에 결국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위는 루소가 그린 호랑이 그림, 가운데는 들라크루아의 작품. 아래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런던 내셔널갤러리·루브르박물관·NOTIMEX/AFP

멕시코에 가 본 적은 없었지만 파병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들은 이국 세계는 루소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가보지 않은 세계를 그리기 위해 주말마다 동물원과 식물원을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루브르 뮤지엄에서 본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표본 삼아 열심히 스케치했다. 루소는 자신의 스승은 자연이라고 말했지만, 훗날 학자들은 작품 속 동식물의 계절이 하나도 맞지 않음을 지적한다. 동물원과 식물원에 꾸며놓은 인공의 자연을 보고 짜깁기하며 그린 그림이라 루소 나름의 편집과 가공을 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은 오히려 이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지적 연구 대상으로서가 아닌, 처음으로 위안과 영감의 원천으로서 자연의 중요성을 다룬 예술이기 때문이다.

크기와 비례도 엉망이고 묘사력도 한참 떨어졌지만 피카소를 비롯한 당대의 젊은 작가들이 열정적인 루소의 순수함을 발견하고 지지하기 시작했다. 66세로 삶을 마친 그의 장례식에는 여러 예술가가 모여 애도를 표했다. 아픔이 가득한 삶이었지만 마음속에 신념을 품고 계속 전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예술가로 희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영국 내셔널갤러리,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환상과 실제 사이, 무엇이 더 흥미로운가

루소의 삶은 얀 마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와 묘하게 닮았다. 이 영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네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려다 큰 풍랑을 겪게 된다. 어린 소년 파이는 다행히 작은 배로 탈출하지만 가족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배에는 그 외에도 다리를 다친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호랑이가 있었다. 동물들끼리 약육강식의 사투를 벌이고 결국엔 파이와 호랑이만 남게 된 상황, 파이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어느덧 배는 멕시코의 한 섬에 다다른다.

호랑이는 밀림으로 유유히 떠나버리고 파이는 사람들에게 구조된다. 병원에서 요양 중인 파이에게 일본인 보험 회사 직원들이 사고 경위를 묻는다. 파이는 호랑이와 함께 살아남은 과정을 설명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파이가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대신에 다리를 다친 선원, 어머니, 요리사로 각색하여 살아남은 인간들 사이의 격투와 살해 이야기를 들려주자 보험 회사 직원들은 그제야 수긍하며 서류를 접수한다. 영화는 나이 든 파이가 삶을 돌아보며 자기를 찾아온 한 소설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이다. 중년의 파이는 소설가에게 두 버전 중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지를 되묻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어떠한 이야기를 믿든 그것은 자유다.’

믿음의 문제

검은 호랑이를 검색해보니 실제로는 발견된 적이 없는 상징적 존재라는 설도 우세하지만 유전자 변이종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새해에는 경제가 나아질 거라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양비론을 논하기 전에 이 모두는 루소가 진짜 호랑이를 봤는지, 파이가 호랑이와 함께 배에 있었는지 아닌지처럼 그 어느 것이 맞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해석 문제로 보인다. 중요한 건 루소가 호랑이를 상상하며 꿈을 키우고, 삶의 고단함을 뛰어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또한 파이는 호랑이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루소와 파이의 호랑이처럼, 올해 우리 곁에 있을 검은 호랑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있는 믿음, 자신을 잘 이끌어주고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 되었으면 한다. 세운이 어떤 이에게는 행운으로 때로는 고행으로 다가올지라도,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나를 자극하고 때로는 힘을 주는 호랑이 기운을 받아 한 해를 우렁차게 보낼 때다. 현재로서는 검은 호랑이의 존재를 알 수 없지만, 한 해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서 2022년이 끝날 무렵 우리는 검은 호랑이가 진짜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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