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승자독식-양극화 정치, 창조적 파괴 해법은 있다

선학태 |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2022. 1.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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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권재창출론 대 정권교체론이 결사항전으로 충돌하고 있다. 대한민국 운명을 바꿀 게임체인저, 국가미래의 틀을 설계하는 국가경영 스킬을 담지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에 고장이 났는데 기사만 교체하면 된다는 형국인가.

선학태 |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궤도 수정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개혁입법이라는 명분으로 속도전을 불사했던 문재인 정부의 연장선상에서 새 대통령도 175석 안팎 절대다수 의석을 동원하여 독점, 독선, 독주로 얼룩진 입법 독치(獨治)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여소야대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적어도 2024년 총선 전까진 공약 입법은 물론, 당장 총리 인선에 거대 야당의 제동이 걸리는 등 험로가 예상된다. 결국 대선 이후 여야 진영 간 대결의 극단화로 정치양극화가 더욱 격화될 우려가 높다.

한국 민주주의의 승자독식 단순다수 선거제, 거대 양당 독점 체제, 제왕적 대통령제는 서로 맞물리며 정치양극화를 확대 심화시킨다. 선거제에 힘입어 의석을 독과점한 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모든 에너지는 대통령의 절대 제왕적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고 되찾기 위한 무한 투쟁으로 집중된다. 대통령은 ‘민선황제’로 등극, 점령군 행세를 하며 인적·물적·정치적 권력자원 등 승자의 모든 전리품을 싹쓸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독점은 정당정치 양극화, 국회정치 양극화를 일상화하는 진앙이고, 이 악순환의 첫 단추 고리는 승자독식 선거제이다.

승자독식-양극화 정치가 복지국가로 경제양극화와 사회불평등을 완화 해소하는 경험적 사례는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사회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12%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저(低)복지국가인데, 이는 승자독식-양극화 정치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증세 없는 복지국가는 허구”라는 명제는 시공간을 넘어 유효하다. 승자독식-양극화 정치에는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분배불평등을 완화하는 증세-복지 연계 정치메커니즘이 내장돼 있지 않다. 더욱이 증세 드라이브는 그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집권당·대통령에겐 정권 명운을 뒤흔드는 폭발성을 지녀, 자칫 ‘정치적 무덤’이 될 수 있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 중심 승자독식-양극화 정치가 승자독식-양극화 경제의 원인이라는 예일대 제이컵 해커 교수의 날카로운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실제 미국 시장경제는 혁신성장에 성공했으나, 공정한 분배 정치 부재로 그 성과가 소수 집단에 집중, 상위 1%가 전체 소득 23% 이상을 독식한다.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로 미국 민주주의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러피언 드림’을 동경했다. 게르만·노르딕 국가들은 비례제가 유인하는 다당제 정당연합, 노사정연합을 제도화했다. 정당연합-노사정연합 연동은 공정한 (재)분배 기제로 작동, 증세-복지 연계 정치를 통해 중부담·중복지, 고부담·고복지 국가를 실현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사회적 파트너들이 증세 책임을 공유해 정치적 리스크를 희석시키는 이른바 ‘비난 분산정치’가 작동, 증세 저항과 갈등을 누그러뜨렸다. 나아가 글로벌화 이후 소득격차, 실업 등 외생적 충격에 따른 공공악재에 그들 국가의 정당연합, 노사정연합은 노동시장의 유연성·포용성·혁신성 순환적 정책조합으로 대응하며 경제양극화와 사회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예외가 없는 보편적 경로를 밟고 있다. 시대정신을 통찰한 노무현이 이런 다이내믹한 정치경제 경로를 그리워했던 까닭이다.

게르만·노르딕 민주주의가 던지는 경험적 메시지는 “정치적 공정성이 경제적·사회적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지점이다. 연합정치는 승자독식-양극화 정치의 안티테제다. 권력의 역설이 있다. 독점권력은 상대를 제압 배제하려 하지만, 분점권력은 대화와 타협으로 협치를 선호한다. 권력을 분점 공유하는 유러피언 민주주의가 이를 웅변한다. 대선 후보들, 특히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이재명에게 묻고 싶다. 승자독식-양극화 정치에 위기의식을 갖고, 정치적 불공정성이 낀 현행 헌정제도를 창조적으로 파괴, 연합정치 친화형으로 혁신하는 국가비전과 로드맵을 구상·공약할 용의가 있는가. 소수정당들의 표를 사실상 약탈해 가는 불공정한 ‘준연동형 비례제’의 제도적 불순물을 걷어내어 시민단체들이 그렇게도 열망하는 순수 연동형 비례제로 선거제를 바꾸겠다고 공약할 수 있는가.

선학태 |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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