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괴벨스'란 보수, '탈레반'이란 진보

이창민 한양대 교수 2022. 1.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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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연설에 등장하는 복지여왕은 유명하다.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흑인, 여성, 복지사기꾼이라는 가공의 캐릭터이다. 당시 미국에 부정한 복지수급자가 왜 없었겠는가? 문제는 이 내러티브가 묘하게 대중의 촉을 건드리면서 보수공화당 부활의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는 거다. 복지는 경제성장의 주적이다.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닥치고 무능한 정부와 싸워야 한다. 더 가관은 요즈음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보수 싱크탱크 케이토 연구소에서는 매년 미국 각 주의 개인적·경제적 자유 순위를 매긴다. 2021년 기준 꼴찌가 뉴욕이고, 상위 2위가 플로리다이다. 개인에게 뉴욕은 지옥, 플로리다는 천국인 셈이다. 뉴욕이 지옥? 자유에 대한 왜곡이 너무하다 싶은데 여기에 천국 플로리다 주지사이자 공화당 유력잠룡인 디온 디샌티스는 작년 11월 조 바이든 정부의 백신 의무화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코로나19 2년에 사람들은 많이 참았다. 이 피로감을 보수가 파고든다. 보수가 시장에 혼돈을 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보수를 나치 선전선동의 대가 요제프 괴벨스에 비유한다. 사실 보수정치는 소설에 능하다. 한국에서 심하게 비판을 받지 않았을 뿐이다. 왜? 그래도 보수가 실력과 품격은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것도 옛말이다. 진보후보가 경제를 더 잘 이끌 거 같다는 여론조사는 이제 흔하디흔하다. 2016년 20대 총선부터 전국단위 선거에서 내리 4연패를 하면서도 무기력하기 그지없었던 보수정당이었다. 치열하게 한국사회를 고민하면서 정책을 만든 흔적은 없고, 비단주머니에서 나오는 건 정치공학뿐이다. 만약 집권하면 부딪칠 일 없어 관료들은 좋을 것이다. 또, 품격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막말, 사생활 폭로 등에 선수가 되었음에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다. 실력도, 품격도 없는 보수정치가 분노의 내러티브를 퍼뜨릴 때 참 난감하다. 지난겨울 전셋집 구할 때 느낀 절망감에 그들이 무임승차해 있는 형국이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이런 보수정치를 살려내 준 것은 진보정부의 부동산정책이기 때문이다.

1931년 제임스 애덤스라는 작가가 그의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문에 비견될 정도로 위대한 미국의 숭고한 가치의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는 어떨까? 한 검색결과에 따르면 1931년 이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어의 연관자료 3분의 2 이상이 ‘집’ 또는 ‘주택’이다. 내 집 마련이 곧 아메리칸 드림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한 언론사의 19~34세 대상 설문조사에서 부동산이 갖는 의미 1위가 꿈이었다. 그런데 부동산은 해마다 마주하고 싶지만 잡으면 잡히지 않는 첫눈과 같다는 말이 가슴을 때린다.

일부에서는 한국진보를 이슬람근본주의 집단 탈레반에 비유한다. 사실 주류진보가 근본주의인가에는 의문이 든다. 실제 현 정부를 보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 같았던 최저임금 인상률도 낮추었고, 대기업 법인세 감면도 역대급으로 많이 해주었다. 그런데 정책의 시작점에서는 무슨 호르몬이 분출하는지 근본주의로 돌변한다. 거창한 ‘론(論)’을 만들고 명분으로 모든 걸 베어버린다. 20세기 위대한 연설로 꼽히는 미국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정도가 되어야 꿈으로서 자격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서 부동산정책으로 임대주택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당신 같으면 임대주택에 살고 싶냐”는 한방에 간다. 이것도 1980년대 거대한 서사에 휩쓸려버린 20대의 아픈 경험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당시 자기의 언어로 학생운동 문건을 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보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하나 들자. 작은 것이 언제나 아름답지는 않다. 중소기업은 경제의 뼈대이지만 실패와 정체를 반복한다. 어리지만 빠르게 성장하며 고용을 창출하는, 껑충껑충 뛰는 가젤 대기업이 필요하다. 이 가젤은 시가총액만 큰 유니콘과는 또 다르다. 시기시기마다 이들이 시장을 휘저어 줘야 혁신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가젤의 등에 중소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20~30대가 올라타야 계층이동사다리가 복원되는 것이다. 이런 기업에 세금혜택 주는 거 주저할 필요 없다. 1974년 워싱턴의 한 식당에서 경제학자 아더 래퍼가 냅킨에 그렸다던, 사실인지 확인도 되지 않는 래퍼 커브를 가지고 감세가 경제성장의 마법이라고 몇십 년을 우려먹는 보수도 문제이지만 핀셋감세에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진보도 이상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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