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칼럼]이재명과 못다 한 실용외교 토론

이중근 논설주간 2022. 1.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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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열흘 전 한국편집인협회가 주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외교안보 담당 패널로 나섰다. 패널들의 모든 질문에 이 후보는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외교안보에 대해서도 자신의 언어로 능숙하게 공약을 설명해, 정책의 대강은 확실히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캠프 내 전문가들로부터 매일 현안에 대해 보고받는다는 말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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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회를 마친 후 이 후보의 답변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 후보는 자신의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방침에 대해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며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특정한 원칙을 경직되게 적용하면 발이 묶인다”고 했다. 실용외교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이익을 찾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혈맹이라는 안보동맹국 미국과 경제적 사활을 쥐고 있는 최대 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끝없이 양해와 양보를 얻어가며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는 것과 다르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도 안전이 보장된 길이 아니다. 유연하게 움직이면서도 미·중 모두에 ‘한국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시키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 바로 원칙이다. 이 후보는 원칙을 정해놓으면 국익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다. 실용에도 분명히 원칙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외교의 좌표를 잡아놓고, 그때 상황에 맞게 조금씩 자세를 조정하는 게 실용이다. 부초처럼 마냥 떠다니다 모두로부터 믿을 수 없는 국가로 낙인찍히면 그보다 더 큰 국익 손실은 없다.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어떻게 돌려받을 것인지에 대한 이 후보의 답변도 아쉬웠다. 이 후보는 명쾌하게 “그걸 무슨 조건을 붙여서 가져오느냐”고 반문했다. 기왕 절차에 의한 환수를 합의하고 따르겠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을 수도 있지만, 조건을 붙이지 않고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아무리 명분이 있는 일이라도 절차가 필요한데, 이 후보의 접근 방식은 한·미 동맹을 깨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어렵다. ‘미국이 없으면 안 된다’는 장교 집단은 이겨낸다 해도 국내 여론을 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력 소모가 너무나 크다. 이 후보는 이날 ‘가급적 이른 시일 내 환수’를 언급했다. 그러나 좀 더 연구했다면 환수 시한을 제시했을 것이다. 1994년 12월, 평시작전권을 환수하면서 했던 대국민 약속을 한 세대가 다 되도록 지키지 못한 것은 국가의 체면에 대한 일이니, 임기 내 어느 시점까지 되찾아오겠다고 못 박는 게 옳았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반환’과 ‘가급적 조기 반환’을 오락가락하다 오늘에 이른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고민을 녹여냈어야 한다. 그게 실용외교다. 그날 이 후보의 발언에 지지자들은 열광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이다 발언은 본질적으로 비외교적이다. 전략은 모호하게 가져간다면서 속내는 다 드러내는 화법도 이 후보는 고민해야 한다.

이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은 백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색깔을 완전히 입히지도 않은 것 같다. 실용외교는 역대 모든 정권이 추구한 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국익과 실용외교를 표방했다. 그렇다면 이 후보는 그들의 실용외교와 무엇이 다른지를 입증해야 한다. 실용외교는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판단, 그리고 행동에 따른 득실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경계할 것이 이념에 포획된 시비선악이나 당위적 주장이다. 준비 안 된 실용외교보다 위험한 게 없다. 이 후보가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이재명 캠프 안에는 외교안보 관점이 매우 다른 두 집단이 공존하고 있다. 이 후보가 직접 명명했다는 실용위원회파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강하게 나가자고 주장한다. 두 그룹 간 충돌이 우려된다. 이 후보는 이들 중 어느 쪽을 중용할지, 두 그룹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3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죽을 쑤는 동안에도 이 벽을 넘지 못하고, 야권 후보 단일화론이 커지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이 후보가 외교안보 공약은커녕 퇴행적·몰외교적 ‘멸공 챌린지’로 중국과 관계를 악화시킨 윤 후보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는 그가 믿을 만하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차기 대통령의 시간은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이다.

이중근 논설주간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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