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만주를 사유하기
[경향신문]
우리와 중국, 몽골, 러시아 사이에는 만주가 놓여 있다. 저 옛날에는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와 발해, 또 선비와 거란, 여진 등의 삶터였고 지금은 주지하듯 중국의 일부이다.
역사를 보면 만주에 터 잡았던 이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니 동북아시아를 호령할 때가 오히려 많았다. 고구려의 위력은 한반도와 일본에서 상수로 작동되었고, 중국의 수·당 제국은 걸핏하면 침략하여 그 위세를 견제하고자 했다. 선비와 거란, 여진은 황하 유역의 중원을 점령하기도 했고, 만주로 이름을 바꾼 여진은 중국 전체를 차지한 데에서 나아가 몽골, 위구르, 티베트 일대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구축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대동아공영권이란 망상에 전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고, 이를 토대로 중국을 압박하는 등 동아시아 일대를 무고한 피로 물들였다. 태곳적부터 그곳에 어엿하게 있어왔던 만주는 이렇듯 동아시아의 핵이었다.
남북 분단 상황이 한 세대만 더 흐르면 100년을 넘어서게 된다. 6·25라는 동족 학살의 쓰라린 경험도 젊은 세대에게는 증조할아버지 세대의 ‘먼 옛날’ 일이 되어 그저 역사 지식의 하나로 화석화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갈수록 우리 사회에서 북한 너머의 만주는 실질적으로 잊힌 땅이 된 듯하다. 만주에 경제 진출을 해도 그곳의 현재인 중국의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에 투자를 한다고 여기지 만주에 투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반중정서의 정치적 활용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대선 국면을 맞이하여 더욱 조장되고 있다. 덩달아 만주도 개인부터 국가 차원에 걸쳐 더욱더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만주를 분리하여 사유할 필요가 있다. 만주가 중국의 일부임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만주가 중국의 엄연한 일부라는 현실 위에서 만주를 우리에게 이롭도록 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길을 모색하자는 뜻이다.
가령 국가가 손실을 보전하는 한이 있더라도 동북 3성에 대한 경제, 문화적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야 한다. 이는 북한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주학’의 육성도 시급하다. 만주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만주 이해가 깊고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주를 중심으로 하는 ‘신북방정책’이 절실한 때라는 얘기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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