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기후위기로 몸살 앓는 중동
[경향신문]
2021년 11월, ‘세상의 반’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시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스파한 도시를 가로지르며 시민들에게 풍요로운 전경을 선사하고, 식수와 농수로 사용되던 자얀데 루드강은 강바닥이 갈라져 있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바로 그 마른 강바닥에 모여 수천명의 시위대가 정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내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이유는 다름 아닌 ‘물 부족’ 사태 때문이었다.
2021년 7월 이란 남부 지역인 후제스탄주는 최악의 가뭄을 경험하였다. 몇 주 동안의 물 부족 현상으로 후제스탄 지역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이란 보안군은 실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아랍 소수민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후제스탄 지역은 이란 농업생산의 중심지이자, 석유와 가스 매장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흡한 이란 정부의 대응으로 발생한 환경 피해와 홍수의 급증, 그리고 미국의 제재로 무너진 사회경제 구조는 후제스탄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란 국민들은 ‘#KhuzestanSOS, #후제스탄에_물이_없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했다. 한편 이란 정부는 이와 같은 시위 배후에는 이란의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는 명백한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의 국민들에게 지지부진한 핵협상보다는 ‘물’의 문제가 일상을 위협하는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우리가 주지할 사실은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불안이 이란뿐 아니라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체의 안보와 미래를 빠른 속도로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6월 쿠웨이트는 53.2도를 기록했고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 50도 이상을 기록했다. 한 달 뒤 이라크의 기온은 51.5도까지 치솟았다. 이렇듯 중동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이면서도 동시에 기후변화 대책은 미흡하다. 포린폴리시 칼럼에 따르면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30년간 3배 이상 증가하였다. 급격한 기온 상승과 더불어 기본적인 제반 시설과 서비스 부족이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기후변화에 더욱 위협 요소로 다가온다.
최근 몇 년 동안 가뭄과 물 부족으로 인해 알제리와 수단을 비롯한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지에서 시위는 계속되었다. 시리아의 가뭄이 부분적으로 시리아 내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2021년 여름, 이라크에서는 기록적인 더위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라크 사람들은 도로를 막고 타이어를 태우며 발전소를 에워쌌다. 레바논에서는 경제가 붕괴되면서 정전 사태가 일상이 되고 있다. 이렇듯 10여년 전 이란과 이라크의 광장에서 독재정권 철폐를 외치던 시민들은 이제 물과 전기 부족 등을 이유로 다시 광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아직까지 불안한 중동의 국내외 정세, 내전 그리고 코로나19 위기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쩌면 중동의 기후 문제는 종교나 이념에 따른 정치적 분쟁보다도 더욱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붕괴를 일으키는 주요한 배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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