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국가 필수전략기술, 기술패권으로 가는 길
지난해 12월22일 국무총리 주재로 2021년의 마지막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개최됐다. 여러 안건 중에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전략'(이하 보호전략)이 눈에 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여파가 경제,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안보까지 확장됨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은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한다.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지역단위로 재편(RVC)됨에 따라 기술선도국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술블록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공유할 첨단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철저히 소외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호전략은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고 정권에 상관없이 지속적,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장기과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공급망 점검에 대한 행정명령(2021년 2월24일)을 통해 반도체 등 미국 내 공급망 현황을 점검해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의회는 '엔트리스 프런티어 액트'(Endless Frontier Act·과학기술 강화 입법)를 통해 핵심기술(key technology) 분야에 5년(2022~2026)간 1500억달러 규모의 R&D 투자를 결정했다. 중국은 '제14차 5개년 규획'에서 기술혁신과 기술자립을 강조하며 국가 전략적 과학기술역량 강화, 과학기술혁신체계 보완 등을 위해 R&D투자를 연평균 7% 이상 증대키로 했다. 유럽연합(EU)은 미국과 공조를 통해 원재료, 배터리, 의약품원료, 수소, 반도체, 클라우드 및 에지컴퓨팅 6개 전략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한 산업전략 개편안을 발표했다.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생명공학, AI, 양자과학, 우주분야, 5G, 반도체 분야에서 R&D 협력을 약속하고 산업 공급망 관리를 위해 관련예산, 무역·통상정책 추진 등을 합의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소부장 대응 등을 위해 R&D투자, 세액공제, 기술보호 등을 폭넓게 지원했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6G, 양자, 우주, 바이오 등 전략기술 분야의 광범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한 점도 돋보인다. 그러나 반도체, 배터리, 5G 분야를 제외하면 아직 추격자인지라 기술패권 경쟁에서 지렛대로 쓸 수 있는 원천기술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기술수준 조사에 따르면 수소, 양자, 우주·항공 등 대표적 전략기술 분야의 우리나라 경쟁력은 최고 기술국 대비 60~80% 수준이며 EU, 일본에 크게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활을 걸어야 할 분야를 정하고 한정된 자원을 집중해 대체불가능한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에 선정한 10대 전략기술 분야는 AI, 5G·6G, 첨단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이다. 이들 분야에 대한 R&D투자를 당장 2조4000억원(미국 67조3000억원)에서 3조3000억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제 촘촘한 후속대책으로 전략의 실효성을 높일 때다.
일감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중심으로 보호전략을 추진, 평가하고 타 정책과 연계·조정하기 위한 범부처 협력체계를 만들고 부처별 역할분담을 철저히 해야 한다. 다음으로 보호전략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후속 법·제도를 마련하고 수요산업과의 협력을 위해 민간 주도 생태계를 조성해 민간의 R&D투자를 유인해야 한다. D.N.A.(데이터, 네트워크, AI), 소부장 등 기존 성장동력 R&D와 연계·협력추진도 중요하다.
국가 필수전략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른바 과학기술주권이다. 과학기술과 산업, 공급망과 통상, 외교와 국방 등 정책간 의존성이 전방위로 커진다.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그래야 G5로 가는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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