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함께 현장 속으로.. 한국 산업선교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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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아버지'로 불린 목사가 있었다.
"산업선교하려는 목사들은 어디 가서 노동을 충분하게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허리가 아픈가, 얼마만큼 졸린가, 인격적으로 얼마만큼 수모를 당하는가, 그런 것을 다 겪어보고, 그러고서 노동자가 쳐다보여야 한다. 이런 것을 견뎌가며 살아가는 그런 엄숙한 모습. 정말 저것이 예수님의, 사람의 엄숙한 종교행위로까지 보이는 그런 경지에 들어가도록 애써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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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영등포산업선교회 이끌며
'노동자의 아버지'로 불리며 활동
교세 확장 위한 공장 전도 넘어서서
노동자 인간다운 삶 실현 위해 앞장
영등포산업선교회는 1958년 영등포 지역 노동자를 위한 영등포산업전도회로 출발했다. 초기 산업전도는 교세확장을 목적으로 공장을 복음화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인권유린 속에 산업전도는 산업선교로 전환됐다. 노동자를 선교하는 것의 본질을 노동 현장을 포함한 사회 구조와 역사를 변혁하는 데 둔 것이다.
조 목사는 그 운동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는다. 1964년부터 영등포산업선교회 초대 총무를 맡아 20년간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원풍모방, 방림방적, 대일화학,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 공단 내 노동자 생존권과 인권을 위한 싸움의 최전선에 섰다.
평전을 집필한 열린 교회의 목사이자 시인인 서덕석은 ‘누군가가 조 목사에게 1970∼1980년대 산업선교가 무엇을 지향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오직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도록 했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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