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진압' 카자흐 대통령, 탈(脫) 나자르바예프 가속(종합)
나자르바예프 거리두기..내부 권력 다툼 본격화 관측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일주일간 이어진 대규모 민중시위 이후 국정 수습에 나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68)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11일 알리한 스마일로프(49) 부총리 겸 총리 권한 대행을 총리로 지명했다.
또 시민들이 일으킨 반정부 시위의 '칼끝'이 향해 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81) 전 대통령을 이례적으로 비난하며 거리 두기에 나섰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이날 토카예프 대통령은 스마일로프 부총리를 새 총리로 지명했다. 뒤이어 하원은 총리 지명 투표를 열었고, 이 장면은 국영TV로 생중계됐다.
스마일로프 부총리는 직전 내각에서 제1부총리를 지냈다. 지난 2일 불거진 가스값 인상 항의 시위가 격화한 지 사흘 만에 내각이 총사퇴하자, 총리 권한 대행을 맡아 왔다.
스마일로프 부총리의 지명을 제일 먼저 축하한 나라는 터키였다. 터키는 이날 화상으로 열린 튀르쿠어국가기구(OTS) 회의에서 새 총리 지명을 축하했다. OTS에는 터키와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헝가리가 참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 2일 가스값 폭등 반대 시위가 반정부 소요로 번지면서 혼란을 겪었다. 지난 5일에는 내각이 시위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9900명이 체포됐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도움을 요청했고, 2500명 병력의 러시아 공수부대가 파견되면서 지난 8일부터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토카예프 대통령이 새 총리를 지명하며 국정 수습에 나선 것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스마일로프 새 총리 지명으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려는 듯 보인다고 AFP는 관측했다.
◇반정부 시위 촉발한 빈부격차 책임, 나자르바예프에게 돌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생중계된 TV 연설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나자르바예프의 통치가 부유한 사람들의 계층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자신의 임명한 '막후 실권자'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관련해 공개적인 비판을 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가다.
구소련 당시 카자흐 공산당 제1서기이던 나자르바예프는 1990년 4월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된 뒤 2019년까지 무려 30년을 집권했다. 2019년 경제난으로 국민 불만이 가중하는 가운데 사임했지만, 이후에도 헌법상 '국가 지도자' 지위를 유지하며 막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여당의 조기선거 실시 후 70%라는 '논란의' 지지율로 집권, 사실상 나르바예프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토카예프 대통령이 이번 시위의 근본 원인으로 분석돼 온 '극심한 빈부격차'의 책임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게로 돌린 것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민심을 달래듯 "이제 세금을 통해 국민을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도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매우 수익성 높은 기업들이 국가 기금에 돈을 내도록 요구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거리 두기'가 단순히 국정 수습 차원을 넘어, 카자흐스탄 내부 권력 투쟁과 관련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이번 사태 중 카림 마시모프 전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의장이 지난 8일 반역 혐의로 체포됐는데, 마시모프 전 의장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마시모프 전 의장은 지난 5일 내각 총사퇴 당시 의장직에서 사임했는데, 이 역시 토카예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관측도 제기된 바 있다.
또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민간의 리사이클링 산업 독점'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딸 알리야 나자르바예바(41)가 깊숙이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 산업은 외국에서처럼 국영기구가 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러 주도 CSTO군 파병, 앞으로 개입 여지 남겨
이번 소요 기간 카자흐스탄에 러시아 주도의 CSTO 군이 파병된 건 앞으로 러시아의 카자흐 문제 개입 여지를 남긴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CSTO는 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6개국의 집단안전보장 조직으로, 러시아는 이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준하는 안보 협의체라고 주장해왔다.
CSTO가 중앙아시아 지역 옛 소련 국가의 소요 사태에 개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직접 앞으로 러시아가 CSTO를 이용해 카자흐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틀 후 단계적 철수가 시작될 것이며, (완전 철수까지) 열흘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CSTO 평화유지군의 주요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됐다"고 덧붙였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CSTO 파병을 바라보는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평가는 엇갈렸다고 AFP는 전했다.
영어 교사인 로자 마타예바(45)는 "파병 소식에 안심했고 사태가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다"며 "러시아와의 협력을 환영한다. 우리 주권에 위협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사진작가인 아딜 쿠안디코프(54)는 지난 6일 아침 대통령 관저 인근인 집 근처 도로에서 시신을 본 뒤 군인들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평화가 올 것이지만, 나쁜 평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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