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등 중증질환 대비 고액의 실손보험은 다시 생각해야"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안호기 논설위원 입력 2022. 1. 11. 21:49 수정 2022. 1. 1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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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

[경향신문]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실장은 큰 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하려고 고액의 실손의료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조언했다. 이석우 기자
서울대 통계학과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이던 2002년 삼성화재에 입사해 보험 업무를 시작한 이후 줄곧 보험만 연구하고 있다. 삼성화재에서는 전공을 살려 상품 설계와 개발 등 보험계리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삼성금융연구소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2015년 보험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건강보험 리스크 관리체계와 손해보험 제도 개선 등을 연구하고 있다. 3·4세대 실손보험 설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금융위원회 판매제한·금지명령 자문위원, 금융감독원 보험상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소수의 과잉진료 억제해
다수의 편익 돌아가도록
설계한 것이 4 세대 실손
병원 자주 안 갈 땐 유리
가장 심각한 비급여 관리
관련기관 모여 답 찾을 듯”

실손의료보험 보험료가 올해 평균 14.2% 오른다. 2009년 9월까지 판매한 1세대 실손과 2009년 10월부터 2017년 판매한 2세대 실손 가입자 2700만명의 보험료는 16% 인상된다. 2017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3세대 실손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률은 8.9%이다. 지난해 7월부터 판매한 4세대 실손은 보험료가 오르지 않는다.

실손보험 가입은 3900만건으로 사실상 전 국민 보험으로 불린다. 가입자가 늘어나면 보험료가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정반대다. 지난해에도 실손 보험료 인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해마다 오르고 있다. 보험료 수입보다 손해보험사에서 지급하는 보험금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손보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31%였다. 보험료를 1000만원 걷어 보험금으로 1310만원을 지급했다는 뜻이다. 보험업계는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액이 3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물론 보험사는 보험료를 받아 사업비로 쓰고 다른 곳에 투자도 하기 때문에 손해율이 높아졌다고 곧바로 보험사 적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대형 손보사는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로서는 해마다 오르는 보험료가 부담스럽다. 금융당국과 손보사들은 새로 나온 4세대 실손으로 전환해 가입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반 소비자로서는 귀찮기도 하고, 보험은 무조건 옛날 것이 좋다거나, 계약조건이 달라지면 자신에게 뭔가 불리해질 것 같다는 이유 등을 들어 갈아타기를 꺼린다. 4세대 실손보험의 뼈대 만드는 역할을 했던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51)에게 합리적인 실손보험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실손 보험료는 계속 오르나.

“보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최근 3년 통계를 보면 매년 실손 보험료는 13%씩, 보험금 지급은 16%씩 올랐다. 손해율을 낮추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구조가 됐다. 특히 비급여 부문 보험금 지급이 급속히 늘고 있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병원 치료 후 영수증을 보면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급여와 본인부담금, 비급여 등 세 가지로 구분돼 있다. 건강보험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수가를 제대로 적용했는지 등 심사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리가 철저하다. 그런데 비급여가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실손 보험금은 심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급여 진료 항목은 대부분 표준화하지 않은 것이고, 병원마다 편차도 크다.”

- 보험금 급증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단순하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손해율의 분모를 보험료, 분자는 보험금이라고 한다면 가입자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이 줄어들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도 자연스럽게 내려갈 수 있다. 다만 소수의 가입자가 과당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독식하는 행태는 큰 문제다.”

- 손해율 상승 부담을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는 것 아닌가.

“보험사들도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1세대 실손은 제도권 내 보험이 아니었다. 보험사가 자기 마음대로 판매한 셈이다. 하지만 이후 표준화가 됐고 3세대, 4세대로 발전하면서 실손보험에 대한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 제도가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의료행위는 현장에서 이뤄지는데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컨대 백내장 수술은 최근 다초점 렌즈 삽입이 대중화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급속한 고령화 진전에 따라 의료수요도 다양화하는 추세다. 그래서 꾸준히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 4세대 실손은 어떤가.

“병원에 자주 가지 않는 가입자라면 4세대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하다. 치료나 입원을 하지 않으면 보험료를 할인한다. 다만 병원 이용이 잦다면 할증돼 보험료가 올라가는 구조로 설계됐다.”

- 무조건 갈아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선택의 문제이다.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를 자주 받는다면 4세대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불가피하게 질병을 앓고 있고 병원에 자주 가는 가입자라면 1, 2세대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이 어떤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조삼모사 같다. 매달 보험료를 더 내면 병원비 부담은 덜어질 것이고, 보험료 덜 낸다면 나중에 병원 갈 때 부담금이 늘어날 것이다.”

- 나이 많은 1, 2세대 실손 가입자는 앞으로 병원 갈 일이 많아질 텐데.

“고령일수록 병원에 가거나 큰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부분까지 지나치게 많은 실손 보험료를 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컨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환자로 산정특례자 등록을 하면 본인부담금이 5%(희귀난치질환은 10%)로 낮아진다. 암에 걸렸을 때에 대비해 실손보험에 든다는 건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국가에서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

- 실손은 중병 걸렸을 때를 대비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뜻인가.

“큰 병에 걸렸을 때 부담을 덜기 위해 실손에 가입하려 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60% 중반대에 그치는 만큼 치료비를 보전하는 차원이라고 여기면 된다. 다만 경증이라도 비싼 비급여 약제를 쓰고 싶다면 실손이 필요할 수 있다.”

- 기존 가입자는 여전히 4세대 전환을 꺼린다.

“시간이 좀 지나면 늘어날 것이다. 3세대 실손도 초기에는 가입률이 낮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났다. 4세대는 지난해 7월 나왔으니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4세대 가입이 저조했던 이유는 3세대 실손에 대한 보험사들의 절판 마케팅 탓도 있었다. 4세대 실손이 보험료는 낮지만 자기부담금이 많고 할증이 된다는 등 단점만 부각시켜 3세대를 판매했다. 4세대는 소수의 과잉진료를 억제해 선의의 다수 가입자에게 편익이 돌아가도록 설계한 실손이다.”

- 과잉진료는 해결 방안이 없을까.

“현실적으로 보험업계에서 과잉진료를 막을 방법은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급여 항목인데, 정부에서 비급여를 공개하고 보고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안다. 비급여에 대한 공적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시그널을 준 것만으로도 진전된 것이다.”

- 백내장 수술이 특히 심각한데.

“보험금 누수와 손해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다. 2017년에는 도수치료가 문제였는데 최근에는 고가의 다초점 렌즈를 삽입하는 백내장 수술이다. 지난해 지급된 보험금 12조원 가운데 1조원 이상이 백내장 수술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암보다 더 많을 것이다. 급여는 수가가 정해져 있지만, 백내장 수술은 비급여라 마땅한 기준이 없다.”

- 청구 전산화는 어떤가.

“실손보험금 청구를 전산화하면 일단 가입자가 한결 편리해지고, 소액 누락 사례도 사라질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전산화하면 표준 양식을 통해 개별 자료를 데이터화할 수 있고 일부 심사가 가능해진다. 핵심은 비급여 관리이다. 과도한 의료 공급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료현장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정부는 뭐하고 있나.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가 지속 가능한 실손보험 정책협의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금융당국과 보건복지부, 보험업계, 의료업계 등이 참여해 비급여 관리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고 있다.”



손보업계,‘적자’ 울상 짓곤‘호황’에 잔칫상…도덕 해이 ‘눈총’

적자라며 실손보험료 두 자릿수 인상 불구 실제로는 꾸준한 호황 구가
금융소비자연맹 “보험료 누수는 해결 못하고 손해율 책임 소비자 전가”


손해보험 업계는 실손보험 탓에 적자에 직면했다고 울상이다. 이로 인해 올해 실손보험료는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다. 몇 해 전에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높아졌다면서 자동차보험료를 올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적자와 거리가 멀다. 손해보험협회 공시를 보면 2010년 이후 손보업계는 꾸준히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공개된 업계 1위 삼성화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2020년 당기순이익이 7668억원에 이른다. 전년에 비해 26%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순이익이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한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치솟았던 2018년에도 1조원 넘는 순이익을 냈다. 손보업계 2위권 현대해상도 상황은 비슷하다. 2020년 순이익은 전년보다 22% 증가한 3061억원이었다.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30% 넘게 늘어난 4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받아 여러 분야에 투자한다. 투자 결과 이익을 내기도 하지만 손실을 보기도 한다. 삼성화재는 2020년 외환 거래에서 2067억원, 파생상품 거래에서 1177억원 손실을 냈다. 현대해상도 외환 거래와 파생상품 거래 손실액이 각각 3800억원, 2373억원이었다.

업계 선두권 손보사들은 실손보험 손해율이 치솟는 상황에서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결과만 보면 소비자에게 받은 보험료를 잘 투자해서 이익을 많이 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실손보험료 인상을 줄기차게 주장해 관철시켰다. 손해율이 상승한 주된 요인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과잉 의료 탓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보험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손보사 책임도 작지 않다. 철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판매를 승인한 금융당국의 방관도 문제다. 자신들의 책임은 외면한 채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실손보험료는 올해 평균 14.2% 인상된다. 가입자 3900만명 1인당 1만원씩 오른다고 가정하면 4000억원 가까운 거액이다. 보험료 인상으로 손보업계의 이익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익이 늘어나면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고 임직원 급여도 올려줄 수 있다. 손보사 임직원은 다른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고액 연봉자이다. 지난해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직원 평균 연봉은 9000만원을 넘는다. 남성 직원은 삼성화재 1억2284만원, 현대해상 1억1400만원이다. 등기이사 평균 연봉은 삼성화재 19억7400만원, 현대해상 17억8600만원이었다. 침묵하는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한 금융의 탐욕과 약탈적 속성을 보는 듯하다.

손보업계는 인프라도 풍부하다. 손보사들이 분담금을 갹출해 운영되는 손해보험협회를 비롯해 화재보험협회,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원, 보험연수원 등이 있다. 공적인 기능도 있지만 사실상 주주인 보험사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이들 기관이 내놓는 연구자료는 보험료 인상의 근거가 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소비자보호 부서가 있지만 보험 유관기관이 내놓는 자료를 검증하는 수준에 그친다.

보험은 보험사에 정보가 집중되고 소비자는 알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성이 큰 업종이다. 연구기관을 등에 업은 보험사가 이런저런 근거를 들이대면서 보험료 인상을 주장하면 소비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보험업계를 만류하는 시늉만 하는 데 그친다. 그나마 일부 소비자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보와 자료가 부족해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실손보험료를 대폭 인상한 손보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지난 10일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손해는 보험료를 올려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이익은 임직원이 나눠 갖는 것은 이율배반적 소비자 배신행위”라며 “보험사들이 보험료 누수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투명한 손해율만을 핑계로 손쉽게 보험료를 인상해 손해율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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