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밭에서 올림픽 무대까지..슬로프에 한 줄기 '금빛 희망' [니하오~베이징 ⑥]

윤은용 기자 2022. 1. 1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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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보이' 이상호의 도전

[경향신문]

이상호가 2017년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노보드 남자 대회전에서 슬로프를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선 배추밭에서 스노보드 시작
아시안게임 2관왕 등 한국 ‘간판’
최근 월드컵서도 절정 기량 과시
이번 대회 최고의 금메달 후보로

하얗게 눈이 쌓인 슬로프 위를 보드 하나에 몸을 맡겨 빠르게 내려오는 스노보드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화려한 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가 하면, 0.01초 차이로 갈리는 승부로 긴장감이 극에 달하기도 한다.

즐길 곳이 많은 북미와 유럽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스노보드는 한국에서는 오랜기간 올림픽은커녕 국제대회 메달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다. 그랬던 것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뒤흔든 한 명의 선수로 인해 입지가 180도 달라졌다. ‘배추보이’ 이상호(27·하이원·사진)는 평창 은메달에 이어 다가오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길 희망하고 있다.

큰 틀에서 스키에 포함되는 스노보드의 세부 종목은 크게 ‘기술’과 ‘속도’를 중심으로 나뉜다. 화려한 공중 동작으로 점프 기술의 우위를 가리는 하프파이프, 슬로프스타일, 빅에어와 속도로 순위를 정하는 스노보드 크로스, 알파인이 그것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이들 5개 종목에 혼성 종목인 스노보드 크로스 단체전을 더해 총 6개 세부 종목이 열린다.

왼쪽 작은 사진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 올라 엄지를 들어보이는 이상호. 연합뉴스

이상호가 나설 종목은 알파인이다. 두 선수가 슬로프를 내려오며 40~50개의 기문을 통과해 경쟁을 펼친다. 예선은 개인 기록을 측정해 순위를 매기고, 32강부터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부를 가린다. 1 대 1 대결이라 긴장감 넘치는 속도 대결을 볼 수 있다. 스노보드 알파인은 기문 간격이 좁은 회전 종목과 넓은 대회전으로 나뉘는데 경기 때 서로 평행해서 슬로프를 내려오기 때문에 평행 회전, 평행 대회전으로 불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평행 회전이 빠져 올림픽에서는 평행 대회전 경기만 열린다.

이상호는 스키의 고장 강원도 정선 출신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처음으로 접했다. 당시 정선 사북의 고랭지 배추밭을 개량한 눈썰매장에서 주로 스노보드를 탔는데, 이로 인해 그의 별명이 ‘배추보이’가 됐다.

초등학교 3학년인 2004년부터 본격적인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상호는 2016~2017시즌부터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회전과 대회전을 모두 석권해 2관왕에 올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이어져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스키 종목 메달리스트가 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금 이상호의 기세는 절정에 올라있다. 이상호는 이번 시즌 5번의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땄다. 지난달 11일 러시아 반노예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서 평행 대회전 금메달을 따 한국 스노보드 선수 최초로 월드컵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되더니 같은 장소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는 평행 회전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이후 3차 대회에서 6위로 잠시 숨을 고른 이상호는 4차 대회 은메달, 5차 대회 동메달로 연거푸 평행 대회전 종목에서 시상대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사람들이 이상호에게 거는 기대가 큰 이유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역대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가 지난달 23일 펴낸 자료에서 밝힌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금메달 1~2개, 종합순위 15위권이다. 전통적인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고 썰매 종목도 올림픽을 앞두고 성적이 저조하다. 그나마 금메달을 기대할 만한 선수가 있다면 쇼트트랙의 간판인 최민정(성남시청), 그리고 이상호 정도다. 이상호는 이번 시즌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종합 360점을 기록해 강력한 경쟁자인 독일의 슈테판 바우마이스터(290점)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로지노프(277점)를 큰 차이로 제치고 랭킹 1위를 달리고 있어 베이징 전망을 더욱 밝히고 있다. 이상호는 지난 8일 5차대회 동메달을 딴 이후 “더 노력해 올림픽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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