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에 시·영화·커피를 바치다

권기정 기자 2022. 1. 1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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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서점에 전시된 책을 살펴보고 있다(위 사진). 책방골목 보존포럼이 열린 지난달 11일 한 고교생이 책방골목 살리기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권기정 기자
인터넷서점 등장 후 힘겹게 생존했지만
오피스텔 등 개발로 지난해만 책방 11곳 폐점
고교생·노인·문인·카페들 골목 살리기 나서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은 70여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면서 국내 유일의 책방골목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서점의 등장과 각종 개발로 점포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들면서 위기에 처했다. 위기론이 알려지자 책방골목의 단골인 청소년과 문인들은 물론 책방골목과 함께 성장해 온 노년층까지 ‘책방골목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보수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밀집 거주지였다. 해방 후 일본인이 버리고 간 책을 주민들이 모아 팔았다. 한국전쟁으로 피란을 온 대학들이 보수동 뒷산에 ‘부산전시연합대학’을 운영하면서 이 일대는 통학로가 됐다. 한 부부가 사과궤짝을 놓고 헌책을 팔았고 노점상이 하나둘씩 생겼다. 노점과 가판대가 주를 이뤘으나 1960년대에는 가건물이 들어서면서 책방골목이 형성됐다. 1970년대에는 70여개의 서점이 밀집하게 됐다. 이후 헌책뿐 아니라 신간 서적, 학원 교재 등의 도매 판매처를 비롯해 정기간행물, 해외 서적, 사전·전집류, 만화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까지 생겨났다.

2000년 이후 인터넷서점의 등장 등으로 폐업하는 업체가 늘자 책방골목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4년부터 책방골목축제를 개최하고 2010년 책방골목문화관까지 건립되면서 유명 관광지로 반짝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남은 서점은 31곳에 불과하다. 2020년 6월 서점 8곳이 팔렸고, 그 자리엔 오피스텔이 건립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서점 3곳이 문을 닫았다.

국내 유일의 책방골목이 위기에 처하자 인근 지역 고교생과 노인, 상인, 문인들이 골목 살리기에 나섰다. 지난해 12월11일에는 보수동 책방골목 보존위원회가 주최한 책방골목 보존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36년간 헌책방을 운영한 상가번영회장 허양군씨는 이 자리에서 “지자체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옥희 우리글방 대표(20년 운영)는 “10여년 전 위기론과 다르다. 우리만의 차별화한 콘텐츠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부산시와 시민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명소를 살려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택수 시인은 “당장의 경제성을 찾을 수 없더라도 문화의 무한한 잠재적 가치를 생각하자”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다양한 정책 제언이 쏟아졌다. 전시회 개최, SNS 캠페인, 책방골목만의 커피 개발 등이다. 이들은 이것들을 실천에 옮기기로 뜻을 모았다.

인근 혜광고와 동주여고 학생들은 1~2월 두 달간 보수마루북카페와 건강북카페에서 책방골목을 주제로 쓴 시집 출판전시회를 열고 있다. 동주여고생들이 제작한 단편영화 <보수동책방골목>과 혜광고생들이 만든 뮤직비디오 <보수동 그 거리>도 상영 중이다. 두 학교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의 시 400여편을 담은 시집도 출간했다.

카페 두 곳은 구청 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곳으로, 회원들은 한 잔에 1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판매하고 수익을 책방골목 살리기 사업에 쓰기로 했다. 판매되는 커피는 지역 업체인 마리스텔라커피가 책방골목 살리기에 동참하기 위해 개발한 ‘보수동 블렌드’이다. 이 밖에 영도구 봉래동에 커피바를 개장한 모모스커피는 책방골목에서 구입한 헌책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김성일 혜광고 교사는 “부산 중구는 한국 최초의 커피 기록이 남은 상징성이 있다”며 “공공북카페에서 책방골목커피를 마시며 SNS에 시를 쓰면 버스정거장 전광판에 노출되도록 하는 재미있고 유익한 관광 프로그램 등을 부산시정 협치사업으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보수동 책방골목 앞에 정거장 모양의 공공조형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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