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1만% 살린 짠내 의사 웹툰.. 드라마 만드니 매운맛 됐어요"
지방 개원 7년간 에피소드 모아
의사들 사이트에 심심풀이 올려
"'슬의'는 판타지.. 이게 찐 의사"
입소문 타면서 방문자 폭발 인기
"고3때까지 의대와 미대사이 고민
불혹 한참 넘겨서 펜으로 갈아타
가족 반응 걱정했지만 좋아해 줘
다음 작품, 첫 도전 분야인 바둑"
흉부외과 김씨, 산부인과 최씨, 비뇨기과 장씨, 일반외과 강씨 등…. 이들이 모여든 곳은 ‘아잉뿌잉 미용학회’. 기기 사용법 설명을 듣던 중 한 남성이 “가까이서 보겠소” 라며 일어났다.
주변의 원성이 커지자, 그는 “난 비뇨기과라고. 이런 거 꼭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뛰어나왔다. “당신만 어려운 줄 알아? 난 남산(남자 산부인과)이라고.” “난 CS(흉부외과)거든? 가족들이 굶고 있다고.” 한 달 후 또 다른 미용학회에서 이들의 싸움은 이어졌다. “난 빚만 10억이거든.” “난 20억이라고.”
오는 14일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되는 ‘내과 박원장’의 원작 웹툰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이서진(사진)의 첫 코미디이자 대머리역 분장으로 화제가 됐지만 원작을 관통하는 웃음 포인트는 ‘짠내 의사’다. ‘명의’를 꿈꾸며 의사가 됐지만, 현실은 ‘대머리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 채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어색한 웃음으로 비타민 주사와 피부 시술을 권해야 하는 개원의들을 향한 위로의 웹툰이다. 의사 출신의 장봉수(필명) 작가는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을 녹여 의술과 상술 사이를 오가는 의사들의 108번뇌를 재치 있게 꼬집었다.
그러나 웹툰이 드라마화되면서 그의 인생에도 변곡점이 왔다. 불혹이 한참 넘은 나이에 과감하게 청진기를 놓고 펜으로 갈아탄 것이다. 이쯤되니 얼굴을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 오래 ‘신비주의’를 유지하다보니 이제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부담이 됐다. 내과 박원장의 시원한 대머리와 볼록 나온 올챙이배에 필적할 만한 외모가 아니었던 게 이유다.
“아내도 그동안 ‘의사 그만두고 갑자기 만화가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드라마화된 것이 큰 영향을 준 거 같아요. 특히 이서진씨가 캐스팅된 게 컸죠. 처음부터 대머리인 배우들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웃음).”
장 작가의 아이들도 아빠가 의사인 것보다 만화가가 된 것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아빠가 만화 그린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이 그 증거다.
현실감으로 다가간 웹툰이었던 만큼 독자들의 관심사는 캐릭터와 에피소드의 ‘사실 여부’다. 특히 허영과 사치에 물든 박원장 아내 ‘사모림’에 대한 묘사는 웹툰 연재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적자에 허덕이는 박 원장이지만, 사모림은 허구한 날 피부과와 영어유치원 등에 수백만원의 지출을 한다. 이런 내용 때문에 부부싸움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드라마에는 웹툰의 모든 에피소드가 담기진 않았다. 일부 중요한 에피소드와 함께 내과 박원장 주변의 의사들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는 “드라마다보니 도덕적 마인드로 접근해서 많이 순화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장사꾼 마인드나 와이프 사치하는 것을 더 강조해서 완전 매운맛이 됐다”고 설명했다. “모든 의사가 돈 잘 버는 것은 아니다”는 ‘짠내’ 주제의식을 그대로 가져간 점에서도 만족감을 표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의대와 미대 사이를 고민하던 그는 이제 ‘미술’로 완전히 갈아탔다. 그 시절 독학으로 그렸던 수천장의 데생은 이제 장 작가의 밑바탕이 됐다. 무거운 의사 가운보다 좀더 가벼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유. 웹툰 세계도 완전 피라미드예요. 의료계보다 살아남기 어려워요. 내과 박원장은 어쩌다 잘된 웹툰이죠. 그전에는 연재해달라고 원고 보내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제 읽어는 봐준다 정도가 된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요.(웃음)”
다음 작품은 또다시 바둑으로 돌아간다. ‘천재 소녀의 엘리트 바둑 기사 도장깨기’ 정도로 요약된다. 한 줄 요약만으로는 ‘내과 박원장’을 뛰어넘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더 없냐는 질문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과연 그 성공이 진짜 성공인가는 한번 보셔야죠.”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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